100년 한옥이 '어니언' 됐다, 계동 상권이 살아났다

입력 2020-08-20 17:17
수정 2020-08-20 17:50


건물은 인생을 닮았다. 태어나 성장하고 정점을 맞이한 뒤 서서히 늙어간다. 수십 년간 쓰여진 뒤 버려지거나 죽어가는 공간들을 되살리는 카페가 있다. 낡은 창고로 쓰이던 금속공장,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진 우체국, 100년 전 지어져 낡디 낡은 한옥까지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는 곳. 카페 어니언의 이야기다.

카페 어니언은 2016년 성수점을 시작으로 미아점(2018년), 안국점(2019년)까지 손 대는 공간마다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썰렁하던 거리, 한적한 동네도 어니언을 만나면 달라진다. 문 닫던 인근 상점들은 주말에도 활기를 되찾고, 새로운 카페와 베이커리가 어니언을 중심으로 삼삼오오 모여든다.

유주형 어니언 대표(34)는 "버려진 것들을 살리는 것에 대한 열망이 있다"며 "우리의 두 손으로 무언가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버려진 공간을 동네의 랜드마크로


어니언은 이제 막 4년차에 접어든 카페 브랜드지만 가장 빠른 시간에 이름을 널리 알렸다. 외국에서도 유명하다.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에게 '꼭 가봐야 할 카페 1순위'로 꼽는다. 코로나19 이전까지 3개 매장에서 외국인 손님 비중이 50%를 넘었다.

"우리의 두 손으로 무언가 바꿀 수 있으면 좋겠다."

1호점인 성수동은 유 대표가 이끌던 온라인 쇼핑몰 피피비스튜디오스 옆에 있던 폐공장이었다. 주차장 용도로 곧 철거될 건물이어서 쓰레기와 각종 고철이 잔뜩 쌓여있던 곳. 1970년대 지어져 슈퍼, 식당, 정비소를 거쳐 금속공장이 마지막 타이틀이었다. 유 대표와 건축 디자인 듀오 패브리커는 과거의 것들을 유지하며 카페 공간으로 탈바꿈 시켰다.

당시 성수동은 폐공장 지대에 땅값도 싼 곳. 이후 유명 패션 브랜드와 블루보틀 등의 카페가 너도나도 성수동으로 몰려왔다. 어니언은 성수동이라는 동네의 얼굴을 바꾼 랜드마크로 거듭났다. 유 대표는 "뉴욕 브루클린에서 영감을 받아 지하철과 공장지대가 공존하고, 한강만 건너면 청담동이라는 상징적인 공간을 마주하고 있는 것도 성수동의 매력이었다"고 말했다.

두 번째 공간을 만든 동네는 미아동. 서울 변두리이지만 20대와 30대 젊은이들이 밀집해 살고 있는 동네라는 것을 파악했다. 성수와 홍대 등까지 나와야 하는 번거로움 없이 "동네에서도 좋은 커피, 맛있는 빵을 만날 수 있게 해보자"는 취지로 접근했다. 동네마다 핵심 상권에 있다 이제는 퇴물이 되어버린 우체국이 눈에 들어왔다.

어니언은 강북우체국에 제안해 절반의 공간을 어니언 카페로 만들었다. 어니언 미아점은 2500원의 배치브루(커피 한 번에 많이 내려두고 서빙하는 방식)가 특징이다. 이 지점을 찾을 손님의 특징을 고려해 글리치, 커피 몽타쥬, 카페 일상, 커피 플레이스 등 전국의 유명 스페셜티 커피 로스터리의 원두를 맛볼 수 있도록 했다.
한옥 카페에서 고무신 전시회를 하는 이유

어니언을 가장 대중적으로 알린 건 지난해 문 연 3호점 안국점이다. 북촌 변두리 한옥에 오래된 전통 한옥을 개조했다. 이 공간은 조선시대 포도청에서 요정, 한정식집 등으로 무수히 변신해온 공간. 뼈대만 남기고 헐어낸 뒤 유리관으로 덮고 다듬는 작업을 했다. 입식과 좌식이 공존하며 현대적인 느낌과 잘 조화를 이룬다. 카페의 입구엔 이런 글귀가 있다.


<i> '처음 이 집이 지어진 날을 떠올려본다. 그때에도 누군가가 안채의 대청마루에 앉아 마당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백 년에 넘는 시간 동안 수 많은 발자국이 머무르고 수 많은 말들이 쌓이며 수많은 눈길들이 겹쳐졌다. 우리는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는 그 모든 이야기를 더듬어가며 지금의 쓰임에 맞게 공간을 매만졌다. 하얀 도와지 위에 이 공간을 올리고 과거의 시선을 오늘까지 연장한다. 우리의 지금이 잠시 휴식이기를, 새로운 삶의 영감이 이곳에 있기를, 조용히 기도한다.' </i>


"가장 한국적인 것, 한국을 대표하는 것들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시간이 가져다주는 아름다움을 보존한 채 공간이 갖고 있는 스토리와 지속 가능성을 함께 표현하고자 했지요."

어니언 3호점에서 유명한 것 하나는 고무신이다. 공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전시용 고무신도 한켠에 눈에 띈다. 나이키와도 협업하고 있는 김정윤 작가와 함께 고무신을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사람들이 우리의 것을 소유하고, 소비하고 싶게 만들고 싶어 11번가에서 판매하기도 했다.

어니언의 고무신 전시에 관한 설명은 이렇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고무신을 신은 사람은 순종입니다. 1920년대 당시만해도 고무는 굉장히 고급소재 였습니다. 이전에는 짚이나 가죽으로 신발을 만들어 신었으니, 눈 비에 강하고 대량생산이 가능한 굉장한 혁신이었습니다. (중략) 옛 것이지만 그렇다고 고루하게 느낄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의 고무신이 멋지게 소비되었으면 합니다.'


어니언이 짧은 시간 탄탄한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었던 데는 팀웍이 있다. 재생공간 프로젝트마다 성공하고 있는 패브리커 팀과 유명 베이커리 브레드05의 강원재 셰프가 이사로 참여하고, 대구의 유명 스페셜티 카페 라우스터프의 김준연 로스터가 CCO(최고고객책임자) 로 합류해 어니언을 함께 이끌고 있다. 카페를 커피를 소비하는 곳 이상의 공간으로 승화시키는 과정에서 가장 본질적인 것에 집중하는 전문가들이 모여 새로운 혁신을 만들어냈다는 얘기다.
첫 자체 로스팅 커피도 '로컬'을 담아 어니언은 지금까지 전국 유명 스페셜티 로스터리에서 가장 좋은 원두를 받아 사용했다. 자체 원두를 만들기 시작한 건 요즘 일이다. 각 지점에서 사용하거나 판매하는 원두는 그 공간과 어울리는 맛을 구현하겠다는 게 어니언의 이야기다.




최근 성수점에서는 '성수블렌드'를 선보였다. 이를 이끌고 있는 김준연 CCO는 "직관적이고, 그 공간에 의미가 있는 커피,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커피를 만들고 싶다"며 "어니언이 걸어온 길과 철학을 구현할 수 있는 원두를 선보이겠다"고 했다.

어니언은 올해 본격적인 해외 진출을 계획했지만 코로나19로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하지만 묵묵히 필요한 일, 잘 하는 일들을 찾아 해나갈 것이라고 말한다.

"어니언은 모든 분야에서 로컬의 스토리, 건강한 먹거리, 지속 가능성 등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다음 매장은 더 깜짝 놀랄 만한 곳에 준비하고 있지요."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