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는 진보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법인세 인하와 같은 자유주의적 정책을 결정했다. 당시 청와대 수석비서관이던 경제관료는 그 배경을 이렇게 전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퇴근 후 관저에서 386운동권 측근들과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출근하면 생각이 ‘왼쪽’으로 치우쳐 있었다. 그럼 나를 포함한 관료 출신들이 시장경제의 중요성을 열심히 설명해 생각을 ‘오른쪽’으로 돌려놨다. 이렇게 해서 대통령의 생각이 유연해졌을 때 실용적 정책 결정이 이뤄졌다.”
대통령이 이념형 측근들에 의해 경도되지 않고 중심을 잡을 수 있었던 데는 관료의 역할이 컸다는 얘기다. 노 대통령은 집권 중 정치권 출신뿐 아니라 이헌재, 윤증현, 김진표, 한덕수, 윤대희, 권오규, 박병원 등 엘리트 경제관료를 청와대와 내각에 중용하고 그들의 말에 귀기울였다. 그는 참여정부의 정체성을 ‘시장친화적 진보’ ‘개방지향의 진보’로 규정할 정도였다. 진보진영으로부터 “좌측 깜빡이 켜고 우회전한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참여정부의 맥을 잇는다는 문재인 정부는 이 점에서는 딴판이다. 정권의 핵심 참모들과 관료 사이의 균형은 깨진 지 오래다. 정권 초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소득주도성장을 놓고 충돌하다가 경질된 뒤로 관료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코로나 긴급재난지원금의 전 국민 지급에 한때 반대했지만 이내 꼬리를 내리고 ‘예스맨’으로 돌아왔다.
전문 관료들이 정책 결정 과정에서 제 역할을 못하다 보니 “경제학과 싸운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시장원리를 거스르는 이념지향형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 정책이 난무한다. 수급 원리에 눈감은 수요 억제 일변도의 부동산 대책 방향과 집을 사지도 갖지도 팔지도 못하게 하는 주택 세제 등이 그렇다. 나라 곳간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정치적 표(票) 계산만 하는 퍼주기 복지 시책이 넘쳐나는 것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 권력이 정치권 참모에게 쏠려 있는 것은 노무현 정부 때의 학습 효과 때문이다. 정권 핵심 참모들은 노무현 정부 때 자신들의 개혁을 완성하지 못한 이유가 관료의 방해 탓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불신으로 처음부터 청와대와 내각 진용에 관료의 발탁을 줄였다. 문재인 정부 첫 내각의 장관 17명 중 관료 출신은 3명(17.6%)뿐이었다. 이 비율은 노무현 정부(36.8%), 이명박 정부(37.5%), 박근혜 정부(38.9%)의 절반도 안 된다. 지금까지 중용한 관료도 대부분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에서 함께 일했던 사람 일색이다.
당·정·청 협의에서도 관료 출신은 배제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선 매주 일요일 저녁 총리공관에서 국무총리와 청와대 비서실장, 여당 대표 등이 만찬을 하며 국정 현안의 큰 가닥을 잡는다. 여기에 관료들은 숟가락도 못 얹는다. 정치인 출신인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홍 부총리를 제쳐놓고 기재부 관할의 부동산 세금까지 감 놔라 배 놔라 할 수 있는 이유다. 일부 관료는 복지부동(伏地不動)으로 ‘소심한 저항’을 한다지만 상당수는 영혼을 반납한 ‘생활형 관료’가 돼가고 있다.
이건 문재인 정부에도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정책을 성공시키려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방향을 조정하고 현실성 있는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 전문성과 현장 경험을 갖춘 관료들의 의견을 듣는 건 기본이다. 그래야 부작용만 낳는 아마추어 정책이 나오지 않는다. 대통령이 이 와중에 “경기회복 기미가 보이고 있다”거나 “주택시장이 안정되고 있다”는 등 현실과 동떨어진 얘기도 하지 않게 된다.
관료들도 어려운 여건이지만 제 목소리를 내야 한다. 헌법이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제7조2항)하는 것은 어느 정당이 집권하든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 직무를 충실히 하라는 의미다. 국가 재정이 파탄나고 시장경제가 무너질 수 있는 정책을 수수방관하는 것은 직무유기다. 임기 후반기로 접어든 문재인 정부의 성패는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정책을 전문 관료를 활용해 얼마나 유연하게 조정하느냐에 달렸다고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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