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화학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 자동차 배터리 국내 ‘빅3’의 연구개발(R&D) 투자가 올 상반기 처음으로 1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들이 ‘제2의 반도체’로 불리며 차세대 먹거리로 꼽히는 자동차 배터리 시장의 기술 우위를 점유하기 위해 대대적인 투자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LG화학은 투자액, SK이노는 증가율 1위
18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자동차 배터리 3사의 올 상반기 R&D 비용은 총 1조803억원으로 전년 동기(9922억원) 대비 8.8% 증가했다. LG화학이 5434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삼성SDI와 SK이노베이션이 각각 4091억원과 1278억원으로 뒤를 이었다.
증가율만 보면 SK이노베이션이 두각을 보였다. 작년 상반기 976억원을 투입했는데, 올 상반기에는 이보다 30.9% 더 늘렸다. 작년 상반기와 큰 차이가 없었던 LG화학과 16.9% 늘린 삼성SDI에 비해 증가폭이 훨씬 컸다. 전문가들은 “후발주자인 SK이노베이션이 상위 업체들을 따라잡기 위해 기술에 대거 투자한 영향”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배터리 ‘기술 분쟁’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업계에선 해석한다. SK이노베이션은 배터리 기술을 탈취했는지를 놓고 LG화학과 다투고 있다. LG화학 직원들이 대거 SK이노베이션으로 이동한 것이 발단이었다. 두 회사는 이 문제를 작년 4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로 가져가 지금까지 다투고 있다. ITC 판정은 오는 10월 나온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SK이노베이션은 기업 이미지를 회복하고 독자 기술을 확보해야 하는 과제가 생겼다.
기술 집중도를 나타내는 매출 대비 R&D 비중은 삼성SDI가 8.2%로 단연 앞섰다. LG화학은 4.0%, SK이노베이션은 0.7%에 그쳐 대조를 이뤘다. LG화학은 석유화학 사업이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SK이노베이션 역시 여전히 정유 사업이 주력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삼성SDI의 R&D 투자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공격적이라는 게 업계의 평가다. 기술 경쟁은 이제부터자동차 배터리 업체들이 R&D 투자를 늘리는 것은 기술 우위에 서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는 절박함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다. 업계에선 배터리 시장이 당분간 ‘호황’을 누릴 것으로 본다. 조만간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 갈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에 따르면 내년까진 자동차 배터리가 141GWh 초과 생산될 전망이지만 2023년에는 140GWh의 공급 부족이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하지만 시장이 급성장하는 만큼 경쟁자도 빠르게 늘고 있어 배터리 업체들로서도 안주할 수 없는 상황이다. 당장 완성차 업체들이 자체적으로 배터리 생산에 적극 나서고 있다. 독일의 BMW는 자체 배터리 기술 개발을 위해 지난 4년간 2억유로(약 2800억원)를 투자했다. 일본 도요타도 1조5000억엔(약 16조원)을 배터리 분야에 투자해 자체 배터리를 개발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완성차 업체보다 월등한 배터리를 내놓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했다.
LG화학과 글로벌 시장 1위를 다투는 중국 CATL도 위협적이다. 중국 정부의 전폭적 지원을 받고 있는 CATL은 내년 말까지 자체 연구센터 21C랩을 짓고 차세대 배터리로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와 나트륨이온 배터리 개발에 나설 예정이다. 일본 파나소닉은 전고체 배터리 기술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손창우 한국무역협회 전략시장연구실 수석연구원은 “한·중·일 3국의 전기차 배터리 승부는 언제든 뒤집힐 수 있는 초박빙 양상”이라며 “대대적인 R&D 투자를 통한 기술 선점이 최우선 전략이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