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증시에서 나스닥종합지수가 역대 최고치 기록(11,129.73)을 갈아치우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한 기업은 전기자동차업체 테슬라였다. 작년 이맘때 주당 200달러 선에서 움직이던 테슬라 주가는 이날 하루 동안 11.2% 급등해 1835.64달러로 마감했다. 지난 1년간 8.4배, 올 들어서만 4.4배로 뛰어 시가총액이 삼성전자를 제쳤다. 월스트리트에선 테슬라 주가의 ‘거품 논란’이 재연될 조짐이다.
부진한 중국 실적에도 주가 고공행진이날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테슬라는 지난달 중국에서 1만1456대를 파는 데 그쳤다. 전달(1만4954대) 대비 23.4% 급감한 수치다. BYD, 니오, 샤오펑모터스 등 현지 업체뿐만 아니라 BMW 등과의 경쟁도 격화하고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세계 최대인 중국 시장에 집중 투자해온 테슬라로선 실망스러운 성적표다. 테슬라는 작년 말 상하이에 지은 기가3 공장에서 중형 세단인 ‘모델3’를 생산하고 있다. 올해 전용 급속 충전기를 4000개 추가해 중국 전역에 총 6500개의 충전 네트워크를 깐다는 방침이다. 내년부터는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모델Y’도 상하이공장에서 생산한다. 투자 전문 매체인 배런스는 “부진한 중국 실적이 공개됐는데도 테슬라 주가가 오히려 더 올랐다”며 “투자자들이 현재 실적보다 향후 전망에 무게를 뒀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최근 주식분할 결정이 수급상 호재로 작용한 데다 매수 의견을 제시한 투자 보고서가 주가 상승에 불을 댕겼다. 댄 아이브스 웨드부시증권 애널리스트는 “중국 수요가 개선될 것이고, 다음달엔 혁신적인 배터리도 발표할 가능성이 있다”며 목표 주가를 1900달러로 높였다. 삼성전자마저 제친 시총테슬라 시가총액은 이날 3421억달러(약 405조원)로, 한국 대장주인 삼성전자(348조원)는 물론 세계 최대 생활용품업체인 프록터앤드갬블(P&G)마저 넘어섰다. P&G는 S&P 500대 기업 중 시총 10위다.
연간 자동차 1000만 대 이상을 판매하는 일본 도요타를 비롯해 미국 제너럴모터스(GM), 포드, 피아트크라이슬러(FCA) 등 4개사를 합한 것보다 테슬라 시총이 더 커졌다. 테슬라는 작년 세계에서 36만7386대를 판매했을 뿐이다.
테슬라 주가는 지난 11일 5 대 1의 주식분할 계획을 발표한 뒤 날개를 달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분할 후 일반 투자자 접근성이 확대될 것이란 예상에 매수세가 몰리고 있다는 것이다. 분할 계획 발표 이후에만 테슬라 주가는 33.6% 급등했다.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는 단번에 세계 4위 부자가 됐다. 머스크가 보유한 주식 가치는 이날 기준 848억달러로 집계됐다. 주식 가치가 하루 동안 78억달러 늘어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회장을 제쳤다. 3위인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와의 격차도 150억달러 이내로 좁혀졌다. “거품이냐, 아니냐” 논란 점화테슬라 주가가 거의 쉬지 않고 올랐다는 점에서 경계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뉴욕에 있는 자산운용사 번스타인의 토니 사코나기 애널리스트는 최근 “테슬라 주가는 매우 고평가됐다”며 투자의견을 하향 조정했다. 적정 주가는 900달러로 제시했다. 그는 “(선두 업체인) 테슬라가 누리는 구조적 이점을 인정하지만 가장 낙관적인 시나리오를 적용해도 지금 주가 수준을 정당화하긴 어렵다”고 지적했다. 테슬라의 주가수익비율(PER)은 944.59배로, 나스닥 평균(23.08배, 14일 기준)보다 40배 이상 높다.
잠재적인 ‘중국 리스크’가 반영되지 않았다는 분석도 있다. 화웨이 틱톡 위챗 등을 강력 제재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맞서 중국이 조만간 반격에 나설 것이란 논리다. 중국의 공격 대상으론 테슬라와 애플 등이 꼽히고 있다. 펀드매니저 출신으로 CNBC의 ‘매드 머니’를 진행하는 짐 크레이머는 “테슬라 거품이 터지기 직전의 임계점에 다다랐다”고 했다.
그럼에도 테슬라 투자자는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미 주식거래 앱인 로빈후드에 따르면 테슬라 주식을 보유한 개인계좌 수는 올해 3월 18만 개에서 이달 55만 개로 늘었다.
뉴욕=조재길 특파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