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방치는 동료효과·선호부재 탓…디폴트옵션 도입으로 해결해야"

입력 2020-08-18 15:37
수정 2020-08-18 15:41
국내 퇴직연금 대부분이 ‘쥐꼬리 수익률’을 주는 원리금보장형 상품에 묶여있는 것은 가입자의 무지와 무관심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18일 이석훈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펴낸 ‘행태경제학 관점에서 본 디폴트옵션의 도입 필요성’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기준 확정기여(DC)형 퇴직연금의 80.5%가 정기예금 등 원리금보장형 상품으로 운용되고 있다. 주식과 채권 등 위험자산에 투자하는 실적배당형 상품은 9.1%에 그쳤다.

반면 퇴직연금과 마찬가지로 국민의 노후자금을 운용하는 국민연금은 주식과 채권에 각각 38.1%, 48.9%를 투자했다. 국민연금의 지난 5년간 연평균 수익률은 4.11%로 퇴직연금(1.92%)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 이 연구위원은 “원리금보장형 중심의 퇴직연금 운용은 노후자금을 준비하는 투자전략으로 적절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퇴직연금이 원리금보장형 상품에 쏠린 원인을 행태경제학의 개념을 이용해 분석했다. 우선 거론된 건 ‘동료효과’다. 직장 내 선배나 동료 대부분이 원리금보장형 상품을 선택하자 신규 가입자들이 주변 지인의 선택을 그대로 따라갔다는 것이다.

가입자 대부분이 장기투자 경험이 없고 지식도 부족해 투자에 대한 명확한 선호를 가지지 못한 점도 퇴직연금을 원리금보장형 상품에 사실상 ‘방치’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지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회사 판매직원들 역시 위험한 상품보단 부담이 적은 안전한 상품을 추천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가입자의 이런 행태에 대한 해결책으로는 ‘디폴트 옵션(자동투자제도)’이 제시됐다. 디폴트 옵션은 가입자가 따로 요구하지 않으면 금융사가 사전에 정해놓은 투자상품으로 알아서 굴려주는 운용 방식이다. 이 연구위원은 “가입자가 장기투자 운용이라는 복잡한 의사결정을 직접 하기 힘든 상황에서 효과적”이라고 덧붙였다.

퇴직연금에 디폴트 옵션을 도입하는 방안은 지난 20대 국회에서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대표 발의했지만 제대로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여당은 뉴딜펀드와 함께 퇴직연금 디폴트 옵션 도입을 재추진할 계획이다. 인프라 사업 투자 확대를 위해선 220조원에 달하는 퇴직연금의 참여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