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상무부가 중국 화웨이 추가제재안을 17일(현지시간) 발표했다. 핵심은 화웨이가 미국 기술이나 장비로 만든 반도체를 조달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지난 5월엔 화웨이와 자회사 하이실리콘의 통신 반도체 개발을 막는 수준의 제재였다. 그래서 규제 대상도 화웨이나 하이실리콘의 주문을 받아 반도체를 생산하고 납품하는 파운드리업체 대만 TSMC로 한정됐다.
이번 규제는 아예 '화웨이로 가는 반도체를 끊어버리겠다'는 의도로 분석된다. 미국 기술이나 장비를 안 쓰는 반도체 기업은 전 세계에 흔치 않기 때문이다. 모든 기업이 강화된 규제의 적용을 받을 전망이다. 화웨이에 연 10조원 안팎의 메모리반도체를 공급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초긴장' 상태다. 만약 화웨이에 메모리반도체를 공급하는 길이 막히면 단기적으론 실적에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중장기적으론 화웨이의 자리를 다른 기업이 대체할 것이기 때문에 D램과 낸드플래시 수요에 큰 변화는 없을 것이란 낙관론도 나온다.
18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는 지난 17일(현지시간) 새롭게 공개한 화웨이 추가 제재안을 통해 '화웨이로 반도체가 못 들어가게 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 상무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지난 5월 발표했던 (화웨이 제재 관련) 규칙을 수정하고 더욱 구체화했다"며 "화웨이가 구매자, 중개자, 또는 최종사용자로 활동하는 경우 수출통제 적용을 받는 항목과 관련한 모든 거래에 '라이선스'(허가)를 받아야한다"고 강조했다. 또 "미국 기술을 사용해 개발 또는 생산한 전자 부품(반도체)을 획득하기 위해 화웨이가 미국 수출 통제를 우회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명시했다.
정리하면 미국 기술이 들어간 반도체를 화웨이에 수출하려면 미국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한다는 것이다. 윌버 로스 미국 상무부 장관은 "화웨이와 해외 계열사는 중국 공산당의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미국 소프트웨어와 기술로 개발 또는 생산 된 첨단 반도체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을 확대했다"며 "미국 기술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는 것은 화웨이를 규제하려는 미국의 지속적인 노력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추가 제재안은 지난 5월 미국 상무부가 발표한 '화웨이 제재안'보다 강화된 내용이다. 당시 미국 정부는 오는 9월부터 △화웨이와 자회사(하이실리콘)가 미국 기술이나 장비를 사용해 반도체를 직접 설계하는 것 △화웨이와 자회사가 미국 기술 없이 설계하고 생산을 주문했을 때, 주문 받은 업체가 특정 미국의 기술, 장비를 이용해 생산해 화웨이로 판매하게 되는 것을 막겠다고 발표했다. 이 제재안은 스마트폰용 통신 반도체 '기린(Kirin)'을 설계하는 화웨이의 자회사 하이실리콘이 대만 TSMC에 위탁생산 주문을 넣어 반도체를 조달하는 것을 막는 목적이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화웨이가 반도체를 아예 못 갖게 하겠다는 강력한 규제"라고 분석했다. "1차 타깃은 대만 미디어텍"강화된 규제의 1차 타깃은 대만의 통신 반도체 설계 전문 업체 '미디어텍'이란 분석이 나온다. 지난 5월 규제로 화웨이가 대만 TSMC를 통해 자체 개발한 통신칩(기린)을 생산하는 방안이 막히자, 대만 미디어텍의 통신반도체를 구매하려는 움직임을 보였기 때문이다. 미디어텍은 '디멘시티'란 브랜드의 5G 통신칩을 개발·양산하며 지난해 글로벌 AP(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 스마트폰의 두뇌역할을 하는 반도체) 시장에서 퀄컴(33.4%)에 이어 세계 2위 점유율(24.6%)을 기록했다. 참고로 삼성전자는 14.1%로 3위, 애플은 13.1%로 4위, 하이실리콘은 11.7%로 5위다.
미국 상무부는 보도자료에서 '미디어텍'이 타깃이라고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글로벌 통신사 로이터의 기사를 보면 미국 상무부 관계자는 "(화웨이가) 타사 디자인하우스(반도체 설계 전문 업체)에서 구매하려고 할 때도 규제할 것임을 분명히한다"고 말했다. 반도체업계에선 "미국 상무부 관계자가 말한 '타사 디자인하우스'는 대만 미디어텍"이란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주가에도 반영되고 있다. 대만 증권거래소에서 18일 미디어텍 주가는 617 대만달러를 기록, 전일(17일) 종가인 683 대만달러 대비 9.93% 급락했다. 규제안대로라면 20일부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D램도 수출 금지 대상관심사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메모리반도체가 미국의 확대된 규제 대상이 되는지 여부다. 미국 상무부가 발표한 규제안 문구만 놓고 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생산한 D램과 낸드플래시도 미국 정부의 수출허가 대상이다. '메모리반도체가 규제대상'이라고 적지도 않았지만 '예외'라고 명시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연원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중국경제실 부연구위원은 "지난 5월 규제안엔 '화웨이가 주문 또는 설계한 반도체'라는 문구가 있었지만 이번 규제안엔 빠졌다"며 "미국 기술이나 장비를 이용해 생산한 반도체를 화웨이에 공급하려면 미국 정부의 허가를 받으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연 부연구위원은 "규제안만 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생산한 D램과 낸드도 수출 허가 대상"이라며 "새로운 규제는 오는 20일부터 시행된다"고 덧붙였다.
외신들도 삼성전자 등의 규제 대상 여부에 주목하고 있다. 경제 전문 블룸버그통신은 상무부 관계자를 인용해 "화웨이를 위해 일하는 모든 칩 회사가 어디에 있든 라이센스 대상이 될 것"이라며 "외국 회사도 미국 디자인 소프트웨어와 장비를 사용하는 한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블룸버그는 이어 미디어텍, 삼성전자, NXP반도체 같은 주요 아시아 및 유럽 칩 회사가 화웨이로의 수출을 계속하려면 라이센스가 필요할 수 있지만 상무부 관계자는 특정 회사의 이름을 지정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미국 현지법인을 통해 '규제 적용 여부'를 파악하고 있다. '이번엔 규제 대상에 포함될 것'이란 관측이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내부에서도 나온다. 반도체업체 관계자는 "미국 정부의 발표대로라면 메모리반도체도 수출 허가 대상"이라며 "좀 더 조사해봐야겠지만 삼성전자 SK하이닉스도 다른 글로벌 반도체업체들과 함께 규제 대상에 들어가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단기 타격, 중장기적으론 영향 크지 않을수도"만약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규제 대상에 포함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화웨이는 지난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로부터 약 10조원 안팎의 D램과 낸드플래시를 구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분기에도 화웨이는 삼성전자의 5대 매출처에 이름을 올렸다.
첫 번째 가능성은 미국 정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D램과 낸드플래시 관련 '수출 허가'를 내주는 것이다. 이렇게되면 화웨이 제재로 인해 받는 타격이 크진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두 번째 가능성은 규제 대상에 포함이되고 화웨이와의 거래를 미국 정부가 막을 경우다. 단기적으론 실적에 작지 않은 타격이 예상된다. 화웨이로 가는 D램과 낸드플래시 공급이 막혀버리기 때문이다. 연원호 부연구위원은 "20일부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화웨이의 D램 낸드플래시 주문을 못 받을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중장기적인 관점에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받는 타격이 크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화웨이가 만에 하나 미국의 제재로 망하게되더라도, 스마트폰 시장에선 삼성전자나 중국 오포, 비보, 샤오미 등이, 5G 통신장비시장에서도 삼성전자, 에릭슨, 노키아 NEC 등이 화웨이의 빈자리를 채울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화웨이가 없어지더라도 다른 기업들이 화웨이를 대체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에 D램과 낸드 주문을 꾸준히 넣을 것이란 얘기다. 반도체협회 관계자는 "화웨이가 독점하고 있는 시장만 아니라면 화웨이가 없어져도 D램과 낸드플래시 수요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정적인 시나리오는 화웨이가 중국에서 반도체를 자체조달하고, 중국 국민들의 '애국소비'에 기대 상당기간 버티는 것이다. 이렇게되면 미국 제재 때문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매출처를 중국 반도체 기업들에 그냥 넘겨주는 꼴이 된다.
가능성은 크지 않다. 중국 YMTC, CXMT가 각각 낸드플래시, D램 제조에 적극 나서고 있지만 한국 제품과의 기술 격차가 1~2년 정도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한 수도권 대학의 반도체 담당 교수는 "기술만 놓고보면 낸드플래시는 1년, D램은 2~3년 정도 차이가 나는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기술을 과시하는 것과 실제 양산에 돌입하는 것은 차이가 있기 때문에 화웨이가 반도체를 중국 안에서 조달하는 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