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을 다시 추진하고 나섰다. 노동자 대표를 공공기관 이사회에 들여보내 경영에 참여토록 법을 개정한다는 방침이다. 20대 국회에서는 야당의 반대로 관련 법안이 처리되지 못했지만, 21대 국회에서는 ‘176석 여당’ 단독으로 처리가 가능하다. 개정안, 340개 공공기관에 적용
박주민 민주당 의원(사진)은 18일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을 골자로 한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개정안은 노동자 500명 이상의 전국 공공기관에 대해 상임이사 중 노동이사를 두 명 이상, 500명 이하인 경우 한 명 이상을 두도록 했다. 노동이사는 1년 이상 재직한 노동자들이 직접 선출토록 했다. 상임이사와 동일한 권한을 가지며, 임기는 3년으로 연임이 가능하다.
박 의원은 “현재 서울 인천 경기 등 6개 지방자치단체가 공공부문에서 노동이사제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며 “(제도 정착을 위해) 법제화가 필요하고, 개선의 여지도 있어 개정안을 발의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노동이사제는 경영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고 노동자들의 지식과 경험을 반영해 성과 향상에 기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의원에 따르면 정부로부터 출자 또는 투자를 받았거나 재정지원으로 운영되는 340개 공공기관이 이번 개정안의 적용을 받게 된다. 현재 노동이사제를 운용하는 공공기관은 없다. 공공기관, “의사 결정 속도만 늦어질 것”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은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다. 문 대통령은 대선 당시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를 실현하도록 공공부문부터 노동이사제를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박광온 민주당 의원이 20대 국회에서 관련 내용을 담은 공운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지만 야당 반발로 통과되지 못했다.
공공기관들은 노동이사제 도입이 국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대부분의 공공기관은 준법감시인 제도와 외부 감사인 지정조치 등을 통해 경영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확보하고 있는 데다, 수시로 감사원 등의 감사를 받기 때문에 노동이사의 경영 개입은 오히려 의사 결정 속도를 늦출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한 공공 금융기관 관계자는 “노동이사제를 도입하면 공공기관 경영에 역효과가 나고 이는 결국 국민 세금 부담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며 “공공 금융기관은 노동자가 승진해서 경영진으로 가기 때문에 노동자와 경영자를 따로 구별하기도 모호하다”고 지적했다.
노동자를 대표하는 노동이사는 공공 이익보다는 노동자 이익을 우선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도 나온다.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 회장은 “노동이사제가 도입되면 공공기관 개혁은 노조 영향력 확대로 불가능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간기업 적용 우려도노동이사제가 공공기관에 도입되면 민간기업으로의 확대는 시간문제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노동이사제를 공공기관에 우선 도입하고, 이후 4대 대기업, 10대 대기업 순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박 의원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노동자 경영 참여’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대안이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민간기업에 대한 노동이사제 도입은 더 큰 문제를 낳을 것으로 우려된다. 주주가 아닌 노동자가 이사를 추천하는 것은 주주권 침해에 해당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노동이사제 도입을 찬성하는 측에서 내세우는 독일의 경우 기업의 90%가 유한회사”라며 “국내 기업이 주식회사 중심이라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미 노동자의 경영 참여는 충분히 보장돼 있다는 주장도 있다. 최완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국은 1997년 ‘근로자 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근로자가 노사협의회에서 경영에 참여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며 “기존 제도의 활성화를 통해 바람직한 근로자 경영 참여를 모색하는 것이 더 합리적인 대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동훈 기자 lee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