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아랍에미리트(UAE)와 이스라엘의 전격 수교 이후 지금 중동 전역에서는 환희와 시위가 교차되고 있다. 충분히 예견된 일이다. 이어 바레인, 오만,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카타르 등 다른 아랍 산유국도 이스라엘을 친구로 맞아들일 시기를 조율하고 있을 것이다. 그만큼 중동 이슬람세계의 이해관계가 달라졌다는 의미다.
범이슬람주의는 20세기 초 종주국인 오스만 제국이 멸망함으로써 끝이 났다. 1960년대 석유수출국기구(OPEC) 결성으로 위력을 발휘했던 아랍민족주의도 수명을 다했다. 1949년 터키를 필두로 이집트, 요르단 등 이슬람국가들이 오랜 적국인 이스라엘을 승인하고 수교를 감행함으로써 ‘움마툴 이슬람’(이슬람공동체)이나 무슬림형제애를 내세우던 느슨한 연대도 빛을 잃었다. 이런 결과는 아랍 각국의 각자도생으로 연결됐다. 이란과 이라크가 같은 시아파 국가면서도 8년 전쟁(1980~1988)을 치렀고, 1990년에는 이라크가 이웃 아랍 형제국인 쿠웨이트를 점령해버렸다. 곧이어 벌어진 제1차 걸프전쟁 때는 다국적군을 도와 아랍국가들이 앞다퉈 이라크 공격의 선봉에 서기도 했다. 또 2017년 6월에는 같은 걸프 형제국가인 카타르를 상대로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바레인 등이 단교를 선언함으로써 이제 중동은 종교 대신 실리를, 형제애 대신 왕정 이익을 선택하는 되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다만 무슬림들의 심장에 각인돼 있는 팔레스타인 문제만은 별개였다. 나라를 송두리째 빼앗긴 팔레스타인의 비극과 1967년 3차 중동전쟁 이후 이스라엘의 아랍영토 불법점령에 대해서는 누구도 양보하지 않았다. 이것은 인류의 보편가치에 대한 도전이고 유엔안보리 만장일치 결의안이나 국제법의 위반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수교는 무슬림들의 공통 연대 가치였던 팔레스타인 이슈조차 각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내팽개칠 수 있다는 우려와 위기의식을 이슬람세계에 강하게 던져줬다. 팔레스타인 정부 재정의 상당 부분을 책임지던 사우디 왕정이 이스라엘과의 협력체제를 구축하면서 팔레스타인에 대한 재정 지원을 대폭 삭감했고, 걸프 산유국의 묵시적 동조로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밀어붙이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지 정착촌에 대한 실효적 지배도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물론 양국 수교조건에서 이스라엘의 웨스트 뱅크 정착촌 병합을 포기한다는 전제를 아랍에미리트 측에서 달기는 했지만, 지난 50여 년간 이스라엘이 일방적으로 점령하면서 60만 명의 유대인이 살고 있는 기존 정착촌을 강제철거하는 문제는 해결될 수가 없는 상황이다.
미국이 중동을 떠나가면서 만들어가는 새 질서의 방향이 이번 수교를 계기로 더욱 뚜렷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세계 최대 에너지 생산국이자 수출국이 된 미국은 더 이상 에너지 문제로 아랍 산유국에 미련을 둘 필요가 없게 됐다. 다만 미국의 가장 강력한 위협 국가인 이란을 압박하고 핵무기 개발을 와해시키기 위해 친미적 성향의 아랍국가들을 이스라엘과 협력시켜 이란에 공동 대응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중동전략 마스터플랜이 제대로 가동된 것으로 보인다. 사임 압박과 탄핵 궁지에 몰린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나 불리해진 11월 대선 국면을 유리하게 반전시켜야 하는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이번 수교는 호재다.
무엇보다 양국 수교의 가장 큰 수확은 이스라엘이다. 이란 코앞에 군사적 교두보를 마련하고 이란 핵시설에 대한 직접 공격이 가능해진 점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전략적 자산이다. 이란에는 뼈아픈 패배다. 그렇지만 이에 맞서는 러시아, 중국, 이란, 이라크, 시리아, 카타르, 터키의 연대와 이합집산의 향방도 만만치 않아 중동은 새로운 냉전 시기를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아랍에미리트와 사우디아라비아를 양대 전략적 동반자 축으로 삼고 중동 정책을 펼쳐왔던 한국 정부로서도 지역 강국인 터키와 이란의 반응을 면밀히 계산하면서 유엔 정신이고 국제적 합의사항인 이스라엘 점령지 반환과 팔레스타인 독립 및 자결권 문제를 존중하는 입장을 버려서는 안 된다. 그 바탕 위에 이스라엘과의 관계 개선을 강화하는 새로운 전략과 발상의 전환이 요구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