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미국을 대표했던 백화점이 택배 물류 창고로 전락하는 시대다. 아마존이 JC페니와 시어스백화점 일부 점포를 택배 물류 창고로 이용하기 위한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이달 보도하기도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유통산업이 재편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롯데 신세계 등 유통기업의 변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됐다. 투자자들도 코로나19가 촉발한 소비 방식 변화에 살아남을 수 있는 유통주를 선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장마 끝나자 코로나19 돌아왔다
지난주 유통업계가 발표한 2분기 실적은 암울했다. 신세계와 이마트는 각각 영업적자 431억원과 474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신세계는 적자전환했고, 이마트는 적자 폭을 더 키웠다. 롯데쇼핑 영업이익은 98.5% 줄어든 14억원, 현대백화점은 84% 감소한 81억원을 기록했다. 7월에도 실적은 나아지지 않았다. 역대 최장기간 장마 때문에 사람들이 집 밖으로 나오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주가는 상승 반전을 시작했다. 지난 1주일간 이마트(14%) 신세계(11%) 롯데쇼핑(8%) 현대백화점(5%) 등이 상승세를 이어갔다. 비대면 종목의 상승세가 주춤한 가운데 그동안 소외됐던 콘택트(대면) 종목이 순환매 국면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국민연금도 ‘저가 베팅’에 나섰다. 코로나19 여파로 2분기 유통주 규모를 줄였던 국민연금은 지난 5일 현대백화점 지분을 기존 12.48%에서 12.59%로, 이마트는 13.15%에서 13.18%로 늘렸다고 공시했다.
문제는 장마가 끝나자 다시 코로나19가 돌아왔다는 점이다. 본격적으로 억눌렸던 소비가 표출되기도 전에 ‘사회적 거리두기’가 2단계로 격상됐다. 각종 할인전을 통해 고객을 끌어들이려 했던 유통업계는 다시 비상이다.
전문가들은 단순히 내수 사이클에 의존해 유통주에 투자하기보다는 시대 변화에 잘 적응하는 종목을 선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종대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코로나 시대의 소비 트렌드 변화를 따라가는 업체는 지금 적자를 내더라도 턴어라운드하며 주가도 쭉 상승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기업은 경기 사이클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비대면 시대 살아남을 종목은롯데그룹은 변화를 모색하고 있지만 더 지켜봐야 한다는 평가가 많다. 롯데는 지난 4월 오프라인의 강점을 온라인으로 끌어오기 위해 롯데그룹 통합 온라인 쇼핑몰 ‘롯데온’을 출범시켰다. 아울러 대대적인 점포 구조조정에 나섰다. 한 유통담당 애널리스트는 “오프라인 시장에서 롯데는 점유율 1위에 모든 밸류 체인을 가지고 있는 것이 무기지만, 온라인 시장에서는 그 장점을 아직까지 잘 끼워맞추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현대백화점도 최근 온라인 식품관 ‘현대백화점 투홈’을 통해 새벽배송 시장에 후발주자로 뛰어들었지만 비대면 사업을 보수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반면 이마트는 적극적으로 변화에 적응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증권사 8곳은 지난 14일 일제히 이마트 목표주가를 상향했다. 2분기 컨센서스를 밑도는 실적을 내긴 했으나 뜯어보면 앞으로의 성장이 기대된다는 이유였다. SSG닷컴 거래대금은 올 들어 두 분기 연속 40% 이상 증가세를 유지했다. SSG닷컴이 강점을 가지고 있는 식품 부문은 50% 이상 늘었다.
롯데마트 점포들이 잇따라 폐점하면서 이마트는 점유율을 높이는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다. 하반기부터는 본격적으로 이익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이마트의 영업이익은 2013년 7350억원을 고점으로 지난해 1507억원까지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박은경 삼성증권 연구원은 “이마트 영업이익은 이르면 3분기부터 작년보다 증가하기 시작해 2021년엔 82%, 2022년에는 35% 성장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7년 만에 찾아온 ‘이익 증가 사이클’인 셈이다.
아마존이 백화점 매장을 ‘택배기지화’한 것처럼 이마트가 일부 오프라인 매장을 물류센터화하는 ‘역발상’ 전략도 긍정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마트는 지난 1월 이마트 청계천점을 2시간 내 배송이 가능한 매장형 물류센터로 전환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