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베트남] 이마트가 보여 준 베트남 1억 내수 공략법

입력 2020-08-16 15:58
수정 2020-08-16 16:09

베트남에서 오래 사업을 영위한 이들이 하는 말이 있다. “베트남 사람들을 상대로 돈 번 기업들이 있는 지 살펴보라”는 것이다. 저렴한 인건비와 각종 세금 면제 효과 덕분에 제조업으로 성공한 기업들은 많지만, 베트남 내수에서 실력을 입증한 기업은 거의 없다는 얘기다. 30년 넘게 미원을 판매한 대상조차 베트남에서 “이제야 돈을 조금 벌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나마 브랜드 노후화로 인해 베트남의 ‘Z세대’에 먹힐 지 고민하고 있는 처지다.

베트남 내수에서 성공하기 어려운 이유는 여러가지다. 가장 큰 문제는 규칙을 종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경기를 제대로 하려면 ‘룰(rule)’이 정확해야 하는데 상황에 따라 제멋대로 바뀌는 게 베트남 등 개발도상국의 특징이다. 이런 이유로 소매 시장 전문가들은 오히려 후진국보다 일본처럼 뚫기 어렵다고 생각했던 시장에 다시 도전하는 게 낫다고 말한다.

뇌물 문화 등 외국인이 적응하기 어려운 기존 관행도 뚫어야할 난제다. 베트남은 수출 기업은 우대해줘도 자국 기업의 이익이나 골목 상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는 외국 업체엔 혹독한 편이다. 각종 서류를 요구하고, 세금이나 소방 등의 규제로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게 만든다. 우리 기업 중에선 이를 우회하기 위해 뇌물 관행에 편승하곤 하는데 결과적으로는 앞으로 남기고, 뒤로 밑지는 장사를 하기 일쑤다.

이 같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베트남 내수에서 성공한 기업들이 없지는 않다. 베트남이 공급자 우위의 소비 시장이라는 점을 거꾸로 활용한 업체들이다. 때론 소비자들이 만족할 약간의 변화만으로도 소비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이마트가 대표적인 사례다. 중국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 베트남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이마트의 사례를 분석했다.

이마트의 베트남 매장은 16일 현재 딱 1개다. 2015년 말 100여 명의 인력을 파견해 베트남 본부를 설립하면서 동시에 호찌민 고밥(Go V?p)점을 열었다. 고밥은 베트남의 젊은 부부들이 밀집해 있는 호찌민 외곽의 ‘베드 타운’이다.
4년만인 지난해 말 고밥점은 한 해 55억원의 이익을 냈다. 매출은 749억원으로 2016년 대비 78.7% 증가했다. 올해는 코로나 신종바이러스 감염증으로 베트남 내수가 폭발하면서 매출 1000억원, 영업이익 100억원도 가능할 전망이다. 단일 점포로는 베트남 전국에서 1위(2019년 매출 기준)다.

베트남의 소매 시장 규모는 약 100조원 규모로 추산된다. 인구가 1억명에 육박하는 데다 경제 성장과 함께 소득 규모가 커지면서 소매 유통 시장은 ‘빅뱅’ 직전의 상황이다.
뚜렷한 절대 강자도 없다. 독일의 메트로와 프랑스 빅씨가 기업형 대형마트의 문을 열었지만, 모두 태국계 업체에 매각했다. 현재 매장 수로는 빅씨가 34개로 1위고, 롯데마트가 14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100조원 중 할인점 비중은 약 6%(이마트 추정)에 불과하다.

이마트는 ‘우보천리(牛步千里)’의 전략으로 베트남 시장에 접근했다. 2011년 시장조사팀을 먼저 파견했다. 축산을 맡은 신선식품 바이어 한 명은 호찌민 중산층의 가정에서 약 1년간 ‘홈스테이’를 해가며 소비 문화에 대한 감을 익혔을 정도다.

중국에서 지불해야했던 실패의 기억은 철저히 자양분으로 삼았다. 중국 2호점(상하이) 점장을 맡았던 ‘패장’을 이마트 베트남 총괄 본부장에 임명했다. 천병기 본부장은 “2006년 중국에 2호점을 낼 때 중국의 1인당 GDP(국내총생산)가 3000달러로 요즘의 베트남과 비슷했다”며 “당시 이마트는 한꺼번에 사람과 물자를 투입해 단숨에 시장 1위를 하겠다는 생각이 앞섰다”고 했다.

중국에서 보여줬던 이마트의 전략은 전형적인 ‘프랜차이즈’ 실패 사례다. 한번 효과를 발휘한 성공 방정식이 다시 한번 적용될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이마트는 미국 월마트의 한국 공습을 물리칠 정도로 한국 할인점 시장의 독보적인 1위였다. 매년 10%씩 경제가 성장하고, 경쟁자들이 아직 없는 시장에서라면 한국형 모델을 그대로 이식하는 것만으로도 성공할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하지만 이마트는 중국에서 27개점까지 운영하다 수백억원의 적자를 안은 채 모두 철수했다.

고밥점은 거의 모든 점에서 중국과는 정반대의 전략으로 시작했다. 출점 장소부터 달랐다. 할인점들이 해외 진출할 때 한인 밀집 지역부터 찾아가는 공식을 깼다. 고밥점에 가보면 한국 사람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다점포 동시 전개를 위해 건물을 임대했던 중국과 달리 고밥점 건물은 이마트가 직접 인수했다. 향후 경쟁이 치열해지면 판관비에서 승부가 날 수 밖에 없다는 판단에서다.

점포가 적다는 약점은 ‘좋은 물건을 싸게 공급한다’는 할인점의 본질로 극복 중이다. 이마트는 중국 사업 실패를 분석하면서 현지의 경력 바이어들에 의존했던 걸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고 한다. 100원 어치를 매입하면 중간에서 바이어들이 절반을 가로챘다. 당시 중국 할인점 바이어들 사이에선 ‘한국 할인점과 거래하면서 집 한 채 못 건지면 바보’라는 말이 돌았을 정도다.

이마트 베트남은 서울에서 파견된 바이어들을 책임자급에 임명하되, 젊은 공채 현지인들을 바이어로 양성하는 방식을 택했다. 천 본부장은 “천천히 가더라도 이마트의 기업 이념을 체득한 직원들을 키울 것”이라며 “고밥점을 오픈할 때 협력사들과의 간담회에서 윤리경영을 선포했다”고 말했다.

이마트의 우보천리 전략은 조용히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경쟁사들과 달리 뒷돈 관행과 결별하니 오히려 가격 경쟁력이 생겼다. 할인점의 뇌물 요구에 지쳐 있던 업체들이 이마트로 눈을 돌리고 있다.

고밥점의 성공은 이마트에 당장의 이익 외의 성과도 안겨줄 전망이다. 베트남 소비 시장에 대한 축적된 경험이 첫 번째다. 천 본부장은 “단일 품목으로 가장 눈에 띄게 팔린 게 개 당 5000원 정도하는 왕딸기”라며 “베트남 사람들은 싼 물건만 찾을 것이란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온·오프라인 통합 점포를 위한 실험도 진행 중이다. 2017년부터 시행한 모바일 주문량은 매년 2배씩 성장 중이다. 이마트 베트남은 현재 5㎞ 이내 1시간 이내 배송을 30분으로 단축하기 위한 시스템을 마련하고 있다. 쿠팡 등 신흥 유통강자의 도전으로 고전 중인 대형마트는 기존의 오프라인 매장을 물류 기지로 활용하는 방안을 강구 중이다. 이마트의 베트남 사업이 중국에서처럼 또 다시 일장춘몽으로 그칠 지, 아니면 과거 유통 왕국의 명예를 되살려 줄 구세주가 될 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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