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 그룹 론칭은 무조건 손해를 감안하고 시작하는 일이라는 말은 어느덧 옛말이 됐다. 가요계 '뉴페이스'인 신인 그룹들이 전략적인 데뷔 플랜 하에 각 엔터테인먼트의 든든한 수익 모델이 되는 것을 넘어 K팝 인기의 한 축이 되어 활약하고 있다. '4세대 아이돌'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등 기세가 심상치 않다. 장기적 발전 가능성이 높다는 강점까지 지니고 있어 이들이 불러올 K팝 신의 판도 변화에도 이목이 집중된다. JYP 시총 1조 주역 니쥬·YG 효자 트레저
가수 겸 프로듀서 박진영이 수장으로 있는 JYP엔터테인먼트(이하 JYP)는 지난달 시가총액 1조를 넘어서며 엔터업종 대장주 자리를 꿰찼다. 14일 3만6350에 장을 마감하며 시총은 1조2902억 원을 기록했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확산세가 여전한 가운데, 어떻게 JYP는 시총 1조를 돌파할 수 있었을까.
박진영은 최근 한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JYP엔터테인먼트가 시총 1조를 넘길 수 있었던 이유로 신인 그룹 니쥬(NiziU)를 꼽았다. 국내에서는 다소 생소한 팀 니쥬는 JYP가 일본 소니 뮤직과 공동 기획한 글로벌 오디션 '니지 프로젝트'를 통해 탄생한 9인조 걸그룹이다. 멤버 전원이 일본인이지만 완벽한 J팝이라고 단정하기에는 무리가 있고, 그렇다고 K팝이라고 단언하기도 어렵다. 일본 현지를 겨냥하고 나온 그룹이지만, JYP와 계약을 맺고 활동하는 팀으로 K팝의 색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K팝에 열성적으로 반응하는 일본 음악 시장에서 트와이스를 탄생시킨 박진영 표 걸그룹은 단숨에 주목을 받았다. 니쥬는 지난달 30일 발매한 프리 데뷔 디지털 미니앨범 '메이크 유 해피(Make you happy)'로 오리콘 주간 디지털 앨범 차트를 휩쓸며 단숨에 '대형 신인' 대열에 올랐다. 일본은 물론, 애플뮤직, 아이튠즈, 중국 최대 음원 플랫폼 QQ뮤직 등 해외 차트에서도 무려 107관왕을 휩쓸었다.
앞서 박진영은 '니지 프로젝트'에 대해 "JYP 미래비전 중 3단계 K팝의 실현"이라며 "해외에서 직접 인재를 육성 및 프로듀싱하는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즉, 팀을 발전해나가는 과정은 해외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기획력은 오롯이 K팝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일본인 멤버가 다수 포함된 트와이스가 국내에서 큰 인기를 얻은 사례를 발판 삼아 그 배경을 일본으로 옮기고, 멤버 전원을 현지인으로 구성하는 확장을 꾀한 셈이다. 그리고 이 전략은 일본 현지에서 제대로 적중했다.
특히 박진영은 니쥬를 두고 "외국인 가수는 맞지만 외국 가수라고는 할 수 없다"고 팀의 정체성을 분명히 했다. 현지 특성에 맞춰 보다 진화된 K팝의 진출을 노리면서도 글로벌 음악 시장에서 인정하는 K팝의 장점만은 가져가겠다는 영리한 전략이다. 프리 데뷔임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K팝의 현지화 성공 사례로 불리며 JYP를 시총 1조의 대장주로 만든 니쥬의 정식 데뷔에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다.
YG엔터테인먼트(이하 YG)가 그룹 블랙핑크 이후 약 4년 만에 내놓은 신인 트레저도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연일 신인 그룹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놀라운 기록을 써내려가고 있다. 데뷔 싱글앨범 '더 퍼스트 스텝 : 챕터 원(THE FIRST STEP : CHAPTER ONE)'은 선주문량만 20만 장을 돌파했고, 앨범이 출시되고 나서는 단 하루 만에 12만 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리며 올해 데뷔한 K팝 신인 중 가장 많은 음반 판매량을 기록하게 됐다.
음반 외에 음원과 뮤직비디오 역시 강세를 보이고 있다. 트레저의 데뷔 타이틀곡 '보이(BOY)'는 발매 직후 홍콩, 싱가포르, 멕시코, 사우디아라비아 등 총 19개국 아이튠즈 톱 송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 뮤직비디오는 공개된 지 약 26시간 만에 1000만뷰를 돌파했다.
트레저의 경우도 상당히 신선하다. YG가 최초로 선보이는 12인조 다인원 그룹임과 동시에 그간 YG가 지니고 있었던 강한 힙합 기반의 색깔을 조금은 덜고, 대중성을 더하는 등의 변화가 가미됐다. 현재 선배 그룹인 블랙핑크가 국내외로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는 가운데 확실하게 차이가 있는 이들의 장르적 방향성은 장기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윈윈 효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일본인 멤버가 무려 네 명이나 포함된 점도 초반 해외 팬덤을 형성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한류에 다시 불 붙은 일본 내에서 안정적으로 인기 가도를 달릴 수 있는 핵심이 됐다. 최대 음원 사이트인 라인뮤직 송 톱100 일간 차트에서 상승세를 타던 트레저는 정상까지 올라 최근 며칠 간 이를 유지했다. 라인뮤직, 라쿠텐 뮤직, AWA 등 일본 주요 음원 사이트의 실시간 랭킹 및 급상승 차트에서 1위를 거둔 것에 이어 꾸준한 음원 호성적으로 일본 내 인기가 일시적인 관심이 아니었음을 증명해냈다. 폭발적 잠재력 '아이랜드'·기특한 시크릿넘버
빅히트엔터테인먼트(이하 빅히트)와 CJ ENM의 첫 합작 프로젝트인 Mnet '아이랜드'에서 탄생할 그룹에도 관심이 쏠린다. 3년의 제작기간, 총 200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됐다는 점에서 '아이랜드'는 시작부터 업계의 이목을 한 몸에 받았다. 그러나 방대한 스케일에 비해 시청률은 내내 저조해 화제성 면에서 다소 주춤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아이랜드'의 시청률로 이후 결성될 그룹의 성패를 판단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아이돌 문화를 주도하는 주요 타깃인 MZ세대들은 TV보다는 온라인 콘텐츠 소비에 익숙하다. 해외 팬덤의 영향력도 막강하기 때문에 TV 시청률보다는 온라인 지표가 더 주요하게 작용한다. 실제로 '아이랜드'는 온라인 화제성에서 눈에 띄는 반응을 얻고 있다. 6회까지 총 온라인 생중계 글로벌 누적 시청자가 1360만을 돌파했고, 디지털 영상 조회수는 6300만을 달성했다. 글로벌 시청자 투표는 무려 173개 국가에서 참여했다.
일각에서는 앞선 Mnet의 '프로듀스' 시리즈와 비교하기도 하나, 프로그램의 성질 자체가 다르기에 비교대상이 되기 어렵다. 굳이 수치로 흥망을 따지자면 실패라고 볼 수 있겠으나 내용적인 측면과 향후 인적 자원이 불러올 효과로 보자면 오히려 기대 요소들이 많다. 기존 오디션프로그램과 달리 세계관을 접목한 '아이랜드'가 구축한 서사는 팬덤을 더욱 공고히 할 요소로 작용할 테다. 앞으로 '아이랜드'가 연습생들의 면면을 조명하는 일에 집중한다면 이 또한 팬덤 확장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
무엇보다 '아이랜드'는 그룹 방탄소년단을 탄생시킨 빅히트의 제작력이 더해진다는 점에서 기대치가 높다. '아이랜드'는 군 입대 시기가 다가오고 있는 방탄소년단의 공백을 메울 대표적인 대체재로, 연내 상장을 목표로 하는 빅히트 입장에서는 제작에 주력해야 할 팀이기도 하다. 실제로 방시혁 대표는 빅히트 회사 설명회에서도 "데뷔 전부터 위버스 가입자 130만 명을 돌파했다"며 "성장 가능성은 무궁무진해서 개인적으로도 매우 기대가 크다"고 하반기 긍정 지표로 '아이랜드'를 언급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신생 엔터테인먼트에서 탄생한 그룹 시크릿넘버의 글로벌 인기도 놀랍고 흥미롭다. 인도네시아 출신인 디타를 주축으로 한 해외 팬들의 반응이 폭발적이다. 특히 이들은 코로나19가 확산한 후인 지난 5월 데뷔했기에 국외 오프라인 활동이 전무한 상태다. 즉, 온라인 상에서의 해외 진출을 이뤄낸 셈이다. 타이틀곡 '후 디스?(Who Dis?)' 뮤직비디오는 데뷔 5일 만에 700만 뷰, 11일 만에 1000뷰를 달성한 데 이어 최근 2000만뷰를 넘겼다.
그간 신인 그룹의 성공은 다수의 포트폴리오를 기반으로 기획력과 제작력이 뒷받침되는 대형 엔터에만 국한되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시크릿넘버의 경우는 신생 엔터테인먼트에서 탄생한 신인 성공 사례라는 점에서 눈 여겨 볼 만 하다. 특히 인도네시아 멤버 디타가 절대적인 영향력을 불러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코로나19가 종식된 후 현지화 전략까지 무리가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시크릿멤버 측에 따르면 해외 진출을 위해 외국인 멤버 영입을 고려한 것은 맞지만, 인도네시아를 염두에 두고 디타를 선발한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러나 디타의 사례를 보고 인도네시아 내 K팝의 확장을 꿈꾸게 됐다고 했다.
소속사 바인엔터테인먼트, 알디컴퍼니는 "아주 고무적인 결과다"라고 자평하며 "디타가 최초의 인도네시아 출신 K팝 멤버가 되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인도네시아의 여러 방송사로부터 출연 제의도 받고, 제품 광고 계약 제안도 다수 들어와서 검토 중이다. 아직 해외 팬들을 직접 만날 수 없기에 이 부분을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 중이다.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여러 국가의 팬분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이벤트를 기획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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