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15일 공매도 거래 재개를 한달여를 앞두고 '공매도 폐지'를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늘고 있다. 공매도 제도가 외국인과 기관 투자자에게 편중된 탓에 개인 투자자들의 손실이 막대하다는 이유에서다. 금융투자업계에서도 공매도 거래 재개를 앞두고 찬반 논쟁이 가열되는 양상이다.'공매도 폐지' 청원, 이달만 3건 14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따르면 이달 들어 '공매도 폐지'를 촉구하는 청원글은 총 3건 올라왔다. 한 청원인은 지난 10일 '허위사실 유포 기사까지 발행하는 공매도 행태는 사라져야 한다'는 청원 게시글을 올렸다.
이 청원인은 "언제까지 소액주주들은 공매도하는 세력들에게 당하기만 하고, 피눈물을 흘려야 하느냐"며 "정말 이러고도 공매도가 주식시장에 필요한 제도인가. 공매도 제도 제발 폐지해달라. 수많은 소액주주들이 공매도로 인해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고 적었다. 이 청원 게시글에 이날 오전 10시30분 기준 7600여명이 동의했다.
13일에는 '그들은 이번에도 대통령을 속일 겁니다. 공매도의 불법성, 공매도는 없어져야 할 것입니다'라는 제목의 청원글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대통령님. 그들은 이번에도 대통령님을 속이려 할 것입니다. 그들이 공매도를 부활시키고자 하는 이유를 진정 모르겠냐"고 주장했다. 이어 "법도 없고, 법이 있어도 지키지 않는 그들만의 리그. 힘도 없고, 빽도 없는 저는 공매도가 무섭기만 하다"고 썼다. 이날 같은 시간 기준 900명이 동의 댓글을 달았다.
공매도는 말 그대로 '없는 것을 판다'는 의미다. 보유하지 않은 주식을 미리 빌려서 파는 주식매매전략이다. 주가가 내려갈 것으로 예상되는 주식을 빌려서 팔고 이후 싼 가격에 다시 사서 갚으면 이익을 얻는다. 주가가 내려가는 게 공매도 투자자에게 이익인 셈이다. 국내에서는 개인 투자자보다 기관이나 외국인 투자자가 공매도를 주로 한다.
금융위원회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국내 주식시장이 급락하자 지난 3월16일부터 오는 9월15일까지 6개월간 모든 상장 종목에 대한 공매도를 금지했다. "공매도 금지 내년까지 연장" vs "외인 유출 우려" 공매도 거래 재개 한달을 앞두고 시장 안팎에서는 찬반 논쟁이 뜨겁다. 공매도가 시장에 유동성을 늘려 시장 효율성을 높인다는 주장과 외국인·기관 투자자에게 유리한 제도여서 개인 투자자의 피해만 야기한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1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매도 금지'를 최소 6개월에서 1년 이상 추가 연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지사는 "공매도는 버블 위험을 견제해 장기적으로 시장 효율성을 제고하고 상황에 따라서는 시장 유동성의 개선도 가져올 수 있다"면서도 "코로나 19는 현재진행형으로, 국내 금융시장은 예상하지 못한 글로벌 변수에 의해 언제든지 급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상봉 한성대학교 교수는 같은 날 한국거래소가 주최한 '공매도의 시장 영향 및 바람직한 규제 방향' 토론회에서 "공매도 금지의 계기가 된 코로나19가 올해 끝나기는 어려우니 내년 정도까지 (금지 조치를) 연장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금지 조치 이후 주식시장을 떠받친 건 개인인데, 만약 지금 공매도가 재개되면 부동산 시장이 들썩거리거나 해외로 다시 돈이 빠져나갈 것"이라며 "내년까지 금지를 연장하고 제도를 점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연합회 대표는 이날 토론회에서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과 기관은 축구 경기 중 양손을 사용할 수 있는 상황"이라며 "외국인·기관이 공매도를 활용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는 반면 개인의 손실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주장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도 "국내 개인 투자자의 공매도 참여 비중은 1% 미만인데, 미국이나 유럽, 일본은 전체 공매도의 25%가량이 개인 투자자"라며 "공매도 접근성 측면에서 국내 개인 투자자들이 받는 제약은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투자업계에서는 위험 회피와 시장 유동성 확대라는 공매도의 순기능을 고려할 때 공매도를 재개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공매도를 금지할 경우 결과적으로 외국인 투자자들이 대거 이탈해 수급 기반이 약해지고 지수가 약세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도 있다.
고은아 크레디트스위스증권 상무는 이날 토론회에서 "지난 3월16일부터 공매도를 금지하면서 외국계 투자회사 가운데 헷지(위험회피) 수단으로 사용하거나 롱쇼트 전략을 사용한 경우 전략이 부재하기 때문에 한국시장을 꺼리는 상황"이라며 "(이 때문에) 투자 제한이 조금 덜한 다른 시장으로 이동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빈기범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공매도와 주가 변동성, 거래량 등 인과관계에 대한 실증적 규명이 없었다"며 "실증적으로는 공매도가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것에 대해) 별다른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