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전지 게임체인저' 전고체 전지…가상공간서 무한반복 실험 길 열려

입력 2020-08-14 17:15
수정 2020-08-15 02:44
스마트폰을 오래 사용하다 보면 열이 심하게 날 때가 있다. 드물지만 때론 폭발 사고도 발생한다. 스마트폰 배터리로 쓰는 2차전지(리튬이온전지)의 가연성 구조 때문이다. 발열을 줄이고 폭발 가능성을 없앤 차세대 2차전지 연구개발이 최근 활발해졌다.

전고체전지가 대표적이다. 리튬전지 내 이온이 오가는 통로인 가연성 액체 전해질을 난연성 또는 불연성 고체로 대체한 전지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지난 5월 이 전지를 함께 제조하기로 발표하면서 주목받았다. 3월 삼성종합기술원은 기존 리튬전지보다 에너지 밀도가 1.3배 높고 1000번 이상 충·방전이 가능한 파우치형 전고체전지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전고체전지엔 고체 전해질로 ‘LPSCl’(리튬 인 황 염화물)가 주로 쓰인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채택한 소재도 이것이다. 가래떡처럼 무른 성질을 가진 5~10㎛(마이크로미터) 크기의 구형 고체 입자다. 그런데 LPSCl는 단점이 있다. 대기 중 수분과 만나면 유독가스인 황화수소를 발생시킨다. 전지 상용화를 위해선 적절한 환경에서 실험을 무수히 반복하면서 최적 설계법을 찾아내야 하는데, LPSCl 전고체전지는 유독가스 때문에 실험 자체가 어렵다. 일각에서 “상용화까지 10년 이상 걸릴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이용민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에너지공학전공대학원 교수와 정윤석 한양대 에너지공학과 교수팀은 전고체전지로 실험하지 않아도 가상공간에서 이를 재현할 수 있는 디지털트윈 모델링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수학적 모델링이 이 기술 개발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전지를 구성하는 소재의 전압, 전류, 농도, 위치, 시간 등을 변수로 편미분방정식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 방정식을 과전압, 이온 흐름, 충·방전 상태 등 다양한 물리화학적 거동을 분석할 수 있는 3차원 시뮬레이션으로 구현했다.

이 교수는 “전극과 전해질이 모두 고체(전고체)인 전지는 디지털트윈으로 먼저 성능을 검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기존 리튬전지는 액체 전해질에 전극 전체가 담기기 때문에 표면 화학반응 등을 쉽게 파악할 수 있지만, 전고체전지에선 이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크기가 다른 돌을 서로 맞댈 때 접촉면이 제한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번 연구 성과는 에너지 분야 국제학술지 ‘어드밴스트에너지머티리얼스’에 실렸다.

기초과학연구원(IBS) 나노입자연구단과 유승호 고려대 화공생명공학과 교수팀은 리튬전지 수명을 줄이는 열화(劣化:물리화학적 상태 악화) 과정의 원인을 찾았다.

연구팀은 충·방전 시 온도를 달리하며 전자현미경으로 음극(이산화티타늄) 상태를 관찰했다. 그 결과 40도 이상에서 음극 나노입자가 잘게 쪼개지는 상변화가 일어나면서 에너지 장벽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치 동맥경화처럼 이온의 이동 경로가 막혀 전지의 성능이 급격하게 떨어졌다는 것이다. 스마트폰을 수년 쓰다 보면 충전 주기가 갈수록 짧아지는 것과 관계가 있다.

연구팀 관계자는 “2차전지 열화 과정의 원인을 분자 수준에서 새롭게 규명한 것”이라며 “차세대 전지 설계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연구 결과는 미국화학회지에 실렸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