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건강보험료율 인상폭이 2%대 중후반에서 정해질 전망이다.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가 핵심인 ‘문재인 케어’ 시행을 위해 지난해 3.49%, 올해 3.20%에 달했던 건보료 인상률이 3년 만에 2%대로 줄어드는 것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13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국민과 기업들의 경제 피해를 고려해 내년도 건보료 인상률을 3% 이상 요구하기는 어려워졌다”며 이같이 밝혔다.
정확한 내년 건보료율 인상폭은 오는 25일 열리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결정된다. 한국경영자총협회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등 가입자 대표들이 동결을 주장하는 가운데 복지부가 3% 이상 인상을 포기해 인상폭은 2.5~3.0% 사이에서 결정될 전망이다.
이 관계자는 또 “건보료 수입이 예상보다 줄면서 보장성 확대도 계획대로 추진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일부 진료 항목의 건보 적용은 유예 또는 연기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건보료 인상률 낮춘다
척추MRI 건보 적용도 연기
정부가 내년 건강보험료율을 3% 이상 올리지 않기로 한 가장 큰 이유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경제 피해다. 지난 5일 결정된 내년 최저임금 인상률이 1.5%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한 가운데 건보료율만 무턱대고 올릴 수 없다는 부담이 작용했다.
건보료율 인상폭이 제한되면서 ‘문재인 케어(건보 보장성 확대 정책)’의 속도 조절도 불가피해졌다. 2017년 정책 시행 당시 정부는 2023년까지 보장률(의료비 지출에서 건강보험이 차지하는 비중)을 70%까지 올리고, 건보 기금 적립금은 10조원 이상 유지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를 위해 필요한 내년과 2022년 건보료율 인상폭은 각각 3.63%였다.
하지만 내년 건보료율 인상폭이 2%대 중후반으로 결정되면 계획보다 1500억원 정도가 덜 걷히게 된다. 보건복지부는 국고에서 1조7000억원을 더 지원받겠다는 계획이지만 저소득층 및 코로나 피해지역 건보료 지원에만 이미 1조원이 들어갔고, 경기 하강으로 건보료 납부도 줄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비급여 진료 항목을 새로 건보 보장 대상에 넣으려던 계획을 수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것은 척추 자기공명영상(MRI)의 건보 적용 연기다. 척추 MRI가 예정대로 올 11월부터 건보 적용 대상에 포함되면 관련 재정 부담은 연 1조20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척추 MRI가 급여화되면 목이나 허리에 조금만 문제가 생겨도 MRI를 찍어보려는 이들이 늘면서 관련 수요가 급증할 것”이라며 “정부 예상치를 두 배 웃돌며 2조2000억원이 소요된 뇌 MRI 사례에서 보듯 척추 MRI 관련 비용도 2조원을 넘길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이를 5~6개월 연기하는 것만으로도 건보료 지출을 줄일 수 있다.
척추 MRI 이외에 다른 진료 항목들도 연기 및 유예가 검토되고 있다.
건보 보장 대상 적용 속도를 늦추면서 건보 보장률 목표 70%를 달성하는 건 불가능해질 전망이다. 문재인 케어 시행 첫해인 2018년 보장률은 62.7%에서 63.8%로 1.1%포인트 오르는 데 그쳤다. 6월과 12월 한 차례씩 조사해 평균을 내는 보장률 조사의 특성상 반기 후반에 새로 포함된 진료 항목이 과대평가되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보장률 상승폭은 더 낮다.
다만 문재인 케어 확대를 늦추며 기금 적립금 10조원 목표는 지킬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문재인 케어의 당초 목표를 무조건적으로 이행하기보다 정부가 재정건전성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