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필두로 세계 증시가 동반 상승하고 있는 가운데 뉴욕 증권가에선 ‘거품’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주가가 단기간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오른 탓이다. 미 통화당국 인사들은 경기 위축 및 고용 충격에 대한 우려를 또 내놨다.
거품 붕괴 경고한 버핏 지수독일의 증시 분석가인 홀거 즈셰피츠에 따르면 일명 ‘버핏 지수’가 지난 9일 100%(세계 증시 기준)를 넘어섰다. 2018년 초 이후 약 30개월 만이다.
버핏 지수는 가치 투자자인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이 2001년 경제전문지 포천과의 인터뷰에서 “적정 주가 수준을 측정할 수 있는 최고의 척도”라고 강조하며 유명해졌다.
세계 시총은 작년 말 90조달러에 육박하면서 GDP(91조9800억달러) 추월을 앞뒀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주춤했다. 최근 대형 정보기술(IT) 업체 중심으로 투자금이 쏠리면서 전체 시총이 GDP를 뛰어넘었다.
세계 증시의 버핏 지수가 100%를 넘긴 건 2000년과 2008년, 2018년 등 세 번뿐이었다고 금융전문지 마켓워치는 설명했다. 이후 증시는 어김없이 급락했다. 즈셰피츠는 트위터에 “글로벌 증시가 드디어 거품 영역에 들어섰다”고 분석했다. 각국이 경제를 봉쇄한 뒤 GDP가 쪼그라든 상황에서 주식시장으로만 돈이 몰리자 버핏 지수가 더욱 가파르게 상승했다는 해석이다.
일부 국가의 버핏 지수는 위험 수위라는 경고도 나온다. 미국의 지난 6월 말 기준 시총은 35조5000억달러로, 올 2분기 GDP(19조4100억달러)보다 훨씬 크다. 버핏 지수에 대입하면 183%가 되는 셈이다. 한국의 버핏 지수는 102% 수준이다.
억만장자 투자자인 조지 소로스도 12일(현지시간) 이탈리아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중앙은행(Fed)이 유동성을 대폭 확대하면서 증시에 거품이 끼었다”며 자신은 주식에 (새로) 투자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연은 총재들 “코로나 충격 커질 수도”Fed 인사들은 비관적인 경제 전망을 쏟아냈다. 에릭 로젠그렌 보스턴연방은행 총재는 이날 온라인으로 열린 한 세미나에서 “미국 일부 주(州)의 잘못된 전염병 대응으로 경기 하강 상태가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며 “고공행진하고 있는 실업률이 천천히 떨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미 실업률은 지난 4월 이후 매달 10%를 넘고 있다.
메리 달리 샌프란시스코연방은행 총재도 이날 기자들과의 콘퍼런스콜에서 “코로나 사태가 당초 예상보다 길어지고 있는 만큼 미 의회가 더 큰 다리를 건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적극적인 추가 부양책을 촉구한 것이다. 달리 총재는 “제로(0) 수준인 기준금리에 대해 시장 참여자들이 잘 이해하고 있지만 Fed가 더 선명하게 의사를 표현해야 할 때가 올 것”이라고 했다.
다만 당국 핵심 관계자들의 이런 우려 섞인 발언은 오히려 증시를 자극하는 호재가 되는 게 최근 경향이다. 유동성을 확대하거나 초저금리를 장기간 유지할 것이란 신호로 해석돼서다. 앤드루 슬리먼 모건스탠리 선임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경기 위축 위험이 높다는 Fed 관계자 발언은 투자자에게 오히려 매수 신호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 버핏 지수
국내총생산(GDP) 대비 시가총액 비율이다. 이 지수가 75% 이하면 저평가된 증시로 볼 수 있지만 100%를 넘으면 거품 신호라는 게 시장의 일반적인 해석이다.
뉴욕=조재길 특파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