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발한 인천공항 비정규직의 절규…"정규직 전환으로 우릴 죽이지 마라"

입력 2020-08-13 14:22
수정 2020-08-13 17:03


"왜 이미 정규직인 우리가 원치않는 본사 직고용 채용 절차를 거쳐야 합니까. "

13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청계천 광장 예금보험공사 앞에는 인천공항 보안검색서비스노동조합 노조원 등 한국노총 인천지역본부 산하 노동자 150여 명이 피켓을 들고 모였다. 하늘색 보안검색요원 근무복을 입은 30여명은 의자에 앉아 집단 삭발식을 단행하며 "고용안정은 커녕 실직자 양산하는 정규직 졸속 전환을 당장 중단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공사 측의 원칙 없는 작고용 절차를 거부하고 고용 안정이 보장되는 자회사 정규직으로 남겠다"고 했다."본사 직고용이 아닌 '고용안정'이 중요"
보안검색 노조는 정부의 무리한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이 오히려 대량 실직자를 만들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5월 인천공항공사를 방문해 정규직 전환을 약속한 뒤 인국공 측은 지난 11일 소방대원 211명과 야생동물통제요원 30명에 대해 공사 직고용 절차를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탈락한 47명은 일자리를 잃게 됐다. 2017년 이후 입사한 비정규직 중 절반 가량이 오는 17일 해고되는 셈이다.

공민천 보안검색서비스노조 위원장은 "지난 3월 공사 직고용 대신 자회사 정규직화에 합의했다"며 "이미 고용 안정을 얻었을 뿐 아니라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이면합의까지 공사와 체결된 상황"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 6월 인국공 측이 보안검색요원의 청원경찰 직고용 방안을 발표하면서 공개경쟁 채용을 거치게 됐고 그 결과 자회사 정규직으로의 전환을 앞두고 있던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시험에 탈락하며 실직 위기에 몰리게 됐다는 것이다.

이면계약에 따르면 2017년 5월 이후 입사자 중 단순직무·일반직무는 서류전형과 면접, 전문직무는 서류전형과 인성검사 및 면접을 통해 자회사로 직고용하기로 했다.

보안검색운영 노동조합 공인수 위원장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통령께 바라는 것은 고용 안정"이라며 "공사 측의 원칙 없는 직고용 절차를 공식적으로 거부하며, 고용 안정이 보장되는 (자회사) 정규직이 되고 싶다"고 했다. 직고용때문에 오히려…비정규직도 아닌 실직자 돼
보안검색 노조는 공사 측이 추진하는 직고용이 정부 성과만을 위한 원칙 없는 채용이라고 비판했다. 실질적으로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목소리를 듣기보다 목표로 삼은 직고용 인원 채우기만 급급하다는 지적이다.

집회에 참여한 노조원들은 정규직 전환을 위한 '제4기 노사전(노동조합·사용자·전문가) 협의체'를 구성하라고 촉구했다.

삭발식을 치른 박미영 씨는 "문재인 대통령의 정규직 전환이 오늘 저의 머리를 깎게 만들었고 비정규직을 죽였다" 며 "정규직화로 비정규직 죽이기를 멈춰달라"고 호소했다.

또 다른 직원은 "세 아이의 아빠이자 가장인 내가 직고용 과정에서 탈락해 오는 16일자로 해고 통보를 받았다"며 "비정규직도 아닌 실직자가 됐다"고 말했다.

무리한 직고용 추진을 멈춰달라는 이들의 요구는 지속되고 있다. 공사 측의 직고용 추진과정에서 탈락해 실직자가 된 소방대원의 가족은 지난 5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한 평생 공항을 지킨 아버지의 일자리를 지켜주세요'라는 국민청원을 올렸다.

인천공항소방대는 지난달 15일 청와대 앞에서 '공사의 졸속 정규직 전환 반대' 기자회견을 진행하기도 했다. 지난 6월 23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게시된 '공기업 비정규직의 정규화 그만해주십오'는 35만2266명의 동의를 받은 상태다. 청와대는 2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은 청원에는 답변을 내놔야 한다.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