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살과 일곱 살 두 딸을 둔 A씨(41)는 자녀 교육을 위해 서울 강남구 대치동 아파트를 구입하려다 포기했다. 당초 일정 금액의 전세를 끼고 사둔 뒤 추가 자금을 모아 아이들이 중학교에 입학할 때쯤 입주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지난 6월부터 대치동 전체가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되면서 계획을 바꿨다. A씨는 “대치동 옆 동네 아파트를 구입하기로 결심했다”며 “거리상 학원가도 멀지 않고 명문여중 배정이 가능해 더 가격이 오르기 전에 사두려고 한다”고 말했다.
지난 ‘6·17 부동산 대책’에 따라 대치동이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된 이후 한 달여간 인근 지역으로 학군지(학군이 좋은 지역) 수요가 몰리며 ‘풍선효과’가 발생하고 있다. 대치동과 학군 및 학원가를 공유하는 도곡동, 개포동, 역삼동의 아파트 거래가 늘고 신고가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대치동 옆 전세 낀 매물 찾아달라”
12일 서울시 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달 대치동 아파트 매매거래 건수는 11건이었다. 지난 6월(134건)의 약 8% 수준으로 급감했다. 토지거래허가제 시행 일인 6월 23일 전까지 ‘대치동 입성’ 막차를 타려는 수요가 몰린 이후 지난달부터 거래량이 뚝 떨어진 것으로 분석된다. ‘6·17 대책’을 통해 대치동을 비롯한 강남구 삼성동과 청담동, 송파구 잠실동 전역에서 대지지분 18㎡가 넘는 주택을 구입하려면 2년간 반드시 실거주해야 한다. 실거주라고 하더라도 다주택 여부, 이사 목적 등에 따라 구청으로부터 허가를 받지 못할 수도 있다.
인근의 도곡동과 역삼동, 개포동 아파트 거래량이 대치동을 앞질렀다. 대치동과 선릉로를 사이에 두고 있는 도곡동에서 지난달 거래 신고를 마친 아파트는 총 48건으로 대치동보다 네 배 이상 많았다. 도곡동 B공인 관계자는 “대치동이 토지거래허가제로 묶이자 수요자들이 넘어오면서 전세를 끼고 살 수 있는 매물을 찾아달라는 문의가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선릉로로 이어진 역삼동도 지난달 43건이 거래됐다. 양재천 건너 개포동은 31건이 손바뀜했다. ‘맹모 단지’ 가격도 껑충현대판 ‘맹모’로 불리는 학부모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이들 지역 아파트는 연일 몸값이 치솟고 있다. 길을 건너지 않고 숙명여중·고, 중대부고에 갈 수 있는 도곡동 ‘도곡렉슬’ 전용면적 134㎡는 지난달 17일 35억9000만원에 손바뀜했다. 대치동이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이기 전인 6월 초 31억원에 거래된 것과 비교해 약 5억원이 올랐다. 같은 블록 내 ‘래미안 도곡카운티’ 전용 106㎡도 6월 16일 27억원에 거래된 후 한 달 만에 1억원이 올라 28억원 신고가를 찍었다.
개포동과 역삼동에서도 신고가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개포동 ‘디에이치 아너힐즈’ 전용 84㎡는 토지거래허가제 시행 기점을 기준으로 22억7000만원(6월 10일)에서 28억3000만원(6월 30일)으로 20일 만에 5억6000만원 올랐다. 이곳에서 대치동 학원가까지 버스 3~4정류장 거리다. 개포동 ‘래미안 블레스티지’ 전용 84㎡는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1주일 만인 6월 27일 27억원에 거래됐다. 종전 신고가인 26억원을 보름 만에 뛰어넘었다. 역삼동 ‘역삼 래미안’ 전용 80㎡도 지난 9일 22억1000만원에 손바뀜했다. 지난 6월 초(19억6500만원)에 비해 2억원 넘게 올랐다.
전문가들은 대치동의 토지거래허가제 지정과 학군 수요로 당분간 대치동 인근 지역 강세 현상이 지속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고준석 동국대 법무대학원 겸임교수는 “시장에 유동성은 넘쳐나는 데다 학군이라는 수요가 겹쳐 대치동 인접 지역이 부각되고 있다”고 말했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