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의 경험은 위기 때 빛을 낸다. ‘코로나 피로증’에 ‘위기 불감증’이 겹친 경제 분야에선 더 그렇다. 만성화된 저성장과 부실재정에서부터 소모적 논쟁만 유발하는 부동산 대책까지, 지금의 정부·여당이 한계를 드러내고 문제를 악화시킨 정책이 한둘이 아니다. 다양한 시각의 원로그룹 지혜를 빌려야 할 시기다.
그제 한국개발연구원(KDI) 주최의 ‘코리안 미러클 발간 보고회’에서 나온 경제원로들의 쓴소리도 그런 점에서 주목된다. 홍재형 전 경제부총리, 한덕수 전 국무총리,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 등 전직 관료들의 현 정부 정책에 대한 걱정은 자못 진지했다. 과도한 국가부채가 대외신인도에 타격을 주면서 미래세대에도 과부담을 지우고, 집값대책이라고 내놓은 방안은 온통 수요·공급의 원칙 등 경제의 기본원리를 무시하고 있고, 중과세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경기회복에 대한 낙관 경계론도 나왔다.
원로들의 지적과 고언은 하나하나 금과옥조였지만, 그렇다고 영 새로운 것도 아니다. 수많은 경제 전문가가 계속 역설해온 내용이고, ‘보통 시민’들도 웬만하면 공감하는 것들이다.
문제는 정작 이런 경고와 판단을 새겨들어야 할 국정책임자들이 귀를 기울이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정부 쪽에서는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대표적이다. 경제정책을 책임지는 ‘경제팀장’으로서 홍 부총리는 과거 선배·상사로 함께 일했던 공직 원로들 지적과 비판에 얼마나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가. 시장과 싸우려는 듯한 거친 부동산 대책부터 무분별한 포퓰리즘 지출로 급속히 악화하는 재정까지 대부분이 홍 부총리가 책임져야 하는 정책 영역이다. 나라 살림의 기본 틀인 세제부터 연간 500조원을 넘는 예산 지출까지 모두 기재부 업무다.
홍 부총리가 정치권의 선심정책에 맞서 ‘재정지킴이’로서 얼굴을 붉혔다거나, ‘정책균형자’로서 당·정·청 협의 등에서 언성을 높였다는 얘기는 들리지도 않는다. 코로나지원금 일괄 살포 때 일시 반대했던 게 ‘면피용 제스처’처럼 남아 있을 뿐, 거대 여당 앞에서 ‘예스맨’이 돼버린 것은 아닌가 싶다. 이러니 지금 한국에 올곧고 전문식견을 갖춘 ‘직업 공무원’이 몇이나 되는가 하는 자조감이 공직사회에 퍼지는 것이다. ‘한국판 뉴딜’ ‘임대차 3법’ 등에서 여당에 끌려다닌 경제관료들의 무력하고 나약한 모습에서 미래 한국의 어두운 그림자를 미리 보게 된다. 경제부총리는 그들의 사표(師表)가 돼야 할 막중한 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