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춘호의 인사이트] 불 붙은 증시…유동성 힘이냐, 4차 산업혁명 先반영이냐

입력 2020-08-11 17:38
수정 2020-08-12 00:26
미국의 올해 2분기(4~6월)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사상 최악인 -32.9%를 기록했다. 하지만 미국 증시는 그다지 큰 충격을 받지 않았다. 성장률이 발표된 다음날인 지난달 31일 기술주 위주인 나스닥지수는 0.43% 상승했다. 시장은 2분기 성장률보다 애플과 아마존 페이스북 구글 등의 실적에 눈을 돌렸다. 주식시장과 실물경제의 괴리가 확연하게 드러났다.

미국 경제의 현실 지표인 GDP가 시장에 전혀 먹히지 않았다. 2분기 미국 소비는 전년 동기 대비 3분의 1이나 떨어졌고 투자는 반토막 났다. 수출도 64%까지 하락했다. 그나마 정부 지출만 플러스를 유지한, 전무후무한 통계 데이터였다. 하지만 시장에선 이 통계에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투자자들은 이런 ‘경제 성적’이 벌써 주가에 반영됐다고 믿었다. 오히려 뉴욕증시의 평균 지수나 시가총액이 미 경제를 대변하는 게 아니냐는 소리까지 들렸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6월 내놓은 보고서에서 미국과 일본 등의 주가 상승에 대해 실물경제와의 괴리가 심하다고 판단했다. IMF는 올해 세계 성장률을 -4.9%로 전망하고 있다. 그들의 진단은 시장이 과도하게 현 상황과 미래를 낙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IMF의 경고는 시장에 먹히지 않았다. 이후 세계 증시는 여전히 상승 랠리를 지속하고 있다.

기술주 위주인 나스닥시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생 이전 수준을 일찌감치 회복했다.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는 지난달 코로나 사태 이전 수준으로 올라섰다. 한국의 코스피지수도 얼마 전 코로나 이전인 지난해 말 종가를 넘어섰다. 다만 미국 다우지수와 일본 닛케이225지수는 아직 코로나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코스피, 지난해 말 종가 넘어서주식이 오르는 이유로 전문가들은 유동성의 팽창을 꼽는다. 미국 중앙은행(Fed)은 3월 1조5000억달러의 유동 자금을 풀었다. 매년 평균 5~10%의 유동성을 공급했던 Fed다. 이번에는 지난해보다 무려 23%의 유동자금을 더 풀었다. 정부와 의회는 경기부양책으로 네 차례에 걸쳐 2조8000억달러의 자금 사용을 통과시켰다. 가뜩이나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양적완화로 유동성이 충분히 공급된 상황이었다. 금리도 0%대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마당에 미국 유동성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물론 미국만이 아니다. 세계 모든 국가에서 유동성 풀기 경쟁이 시작됐다. 5월 말까지 각국 정부가 경기부양을 위해 쏟아낸 자금이 15조달러(약 1경8200조원)에 이른다는 보고도 있다.

이 같은 유동성은 금융회사를 거쳐 기업과 가계로 흘러간다. 하지만 기업과 가계는 위기상황에 맞서 저축을 늘린다. 미국의 저축률은 4월 전대미문의 33.5%를 기록했고, 6월에도 24.0%를 나타냈다. 2012년부터 줄곧 7%대를 오르내리던 저축률이었다. 0%대 금리에서 벗어나 수익을 더 얻으려는 자금들은 주식과 금시장을 넘나든다. 한국의 주식 예탁금만 50조원이 넘는다. 한국도 유동성 증가폭이 사상 최대다. 5월 통화량(M2 기준)은 전달에 비해 35조3716억원 늘었다.

시중에 풀린 유동성은 부동산과 금융으로 많이 흘러들어간다. 하지만 지금 미국에선 주식시장으로 많이 가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때의 뼈아픈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위기가 닥쳤을 당시 S&P500지수는 2009년 3월까지 45% 빠졌다. 하지만 이후 주식시장은 V자로 반등해 이전 수준을 회복하고 다시 상승곡선을 그렸다. 당시 폭락장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때의 일을 평생 아쉬워한다. 이런 기회가 생기면 반드시 참여하겠다고 결심했다는 것이다. 2009년 주식 랠리 경험자 다시 도전주식시장 참여도가 높아진 것에 대한 다른 분석도 있다.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는 자신의 이론인 군중심리로 해석한다. 그가 주식시장의 움직임을 코로나 확산 시기에 따라 나눠본 결과 2월 20일부터 3월 23일까지는 34% 빠졌고,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는 40% 상승했다. 실러 교수는 이를 군중심리에 따른 쏠림 현상으로 간주했다. 그는 Fed가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언젠가 긴축을 한다면 자신만 소외될지 모른다는 FOMO(Fear of Missing Out) 현상이 팽배할 것으로 내다봤다.

일부에선 미국을 비롯해 한국 일본 등에서 젊은 층 거래자가 증가한 것 역시 유동성을 주식으로 흡수한 요인이 된다고 설명한다. 이른바 글로벌 동학개미 현상이다. 이를 두고 밀레니얼 세대의 특성이 그대로 드러났다고 분석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비교적 변동성에 대한 리스크를 즐긴다.

코로나 경기침체를 예측하긴 쉽지 않다. 각국의 봉쇄 조치로 수요와 공급이 동시에 멈춰진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무엇보다 서비스산업의 위기다. 식당과 여행, 체험형 오락 등 코로나에 거꾸러진 산업 대부분이 서비스산업이다. 서비스산업은 가격 경직성이 강하다. 가격이 떨어지지 않으면 수요가 대폭 줄면서 판매량이 급감한다. 미국 스페인 등 서비스산업 위주인 국가들의 경제가 극히 나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와타나베 쓰도무 일본 도쿄대 교수는 이를 대면과 비대면산업으로 나눈다. 비대면은 디지털 재화와 서비스다. 코로나 이후 대면산업 수요가 줄어들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중소 영세 서비스업 가장 심한 침체중소 영세 서비스업은 GDP에는 들어가지만 시장에선 평가하지 않는다. 일부 기업을 제외하고는 상장돼 있지 않다. 코로나 위기는 이들 중소 영세 서비스 기업에 가장 큰 타격을 준다. 서비스산업의 고용 비중은 미국의 경우 80%가 넘는다. 한국도 67%를 넘나든다. 이들 서비스업의 비중이 큰 GDP와 기업 중심인 주식시장에 괴리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기존 GDP에 빠져 있는 경제활동도 많다. 코로나 사태로 가사노동이 늘어나고 있지만 이것은 GDP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사람들의 후생 수준이 내려간다고 말할 수는 없다. 외식을 하지 않아 GDP엔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여행 등 전통적 레저를 줄이고 유튜브 영상을 주로 본다면 이 또한 소비가 일어나지 않은 것으로 간주된다. 줌을 통한 영상회의도 GDP에선 포착되기 힘들다.

각국은 경기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산업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고용을 늘리고 수요를 확대하려는 목적이다. 10년에 한 번 변한다는 기술의 파괴적 혁신 주기가 이미 돌아왔다. 유럽은 전기차와 수소에너지를 기반으로 한 에너지 정책을 펼치고, 미국은 5세대(5G) 소프트웨어 등을 전략산업으로 삼았다. 코로나 사태가 끝나면 산업의 질적 변화가 찾아오게 될 것이다. 앞으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등 글로벌 주식시장을 견인하는 테마주는 계속 나올 것이다. 주가는 장래의 이익을 현재 가치로 할인한 것이다. 주식시장은 결국 미래로 향한다. 코로나도 유동성도 결국 그 미래가 앞당겨 오도록 하는 촉매제이자 마중물이다. 한국의 2분기 성장률은 -3%로 외국에 비해 선방한 모습이다. 한국은 시총 상위 기업들의 변화가 가장 많은 나라기도 하다. 우리는 지금 미래의 테스트베드 역할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산업 구조 재편으로 'K자 쏠림' 바이오·배터리 등 가파른 성장 ■ 성장산업 마중물 된 유동성
증시서 대규모 자금조달 기업들, 신성장산업 투자 실적개선→재투자 선순환2차전지 소재를 생산하는 엘앤에프는 최근 공장 증설에 필요한 자금을 주식시장에서 조달했다. 자동차 배터리 관련 투자가 관심을 모으면서 자금 조달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신주 발행가도 당초 계획보다 두 배 가깝게 받았다.

포스코케미칼도 최근 전남 광양공장의 차세대 배터리 소재 생산설비 확충을 위해 3000억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지난 5월 2단계 생산라인을 확장한 데 이어 3개월 만에 또다시 증설을 결정한 것이다. 포스코케미칼 주가는 2년 전만 해도 3만6000원대를 오르내렸지만 현재 9만7000원 선에 거래된다. 시가총액도 6조원에 육박한다. 주가가 이처럼 오르지 않았으면 공장 투자가 힘들었을 것이다. 이엔지 코스모신소재 등 다른 배터리 업체들도 주식시장이 투자자금의 넉넉한 뒷배다. 전기차 배터리의 대표 격인 LG화학은 2차전지 설비 투자에만 지난해 3조8000억원을 쏟아부었다. 산업 구조 재편으로 'K자 쏠림'
바이오·배터리 등 가파른 성장주가에서도 쏠림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한국 미국 독일 프랑스 증시 모두 코로나19 시대에 두각을 나타내는 기업에 투자자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디지털 기업과 바이오 전기차 2차전지 관련 기업 등이 대표적이다.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산업 구조의 본질적인 변화가 코로나 기간에 일어나고 있다.

무엇보다 유동성이 성장산업에 마중물 역할을 하고 있다. 유동성이 풍부해지면서 기업 실적이 좋아지고 다시 투자여력이 생겨 더 큰 규모로 급성장한다. 투자자들은 이를 반긴다.

일부 전문가는 이런 쏠림 현상을 K자형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디지털이 가속화할수록 K자의 윗부분이 가팔라져 K자의 위와 아래가 더 벌어진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의약품과 바이오 배터리 정보기술(IT)서비스 등이 성장업종으로 각광받고 있다. 하지만 금융 보험 등의 서비스 업종은 팬데믹(전염병의 대유행) 기간에 가장 많이 빠졌다.

이런 흐름이 언제까지 갈지는 알 수 없다. 일부에선 코로나19 백신 개발 상황과 오는 11월 미국 대통령선거의 결과를 봐야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산업 구조의 본질적인 변화가 진척되는 상황에서 이런 흐름이 거꾸로 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물론 K의 아래쪽에서 반격하는 기업도 나올 것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 비즈니스 모델의 성공 여부는 기업이 근본적으로 파괴적 혁신을 할 수 있는 역량을 갖췄느냐에 달려 있다. 기업에는 그런 혁신을 위한 핵심 역량을 찾아야 한다.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