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 기자] 누군가는 래퍼 비지(Bizzy)의 그 날을 보고 웃었을지도 모른다. 수백, 수천 번의 연습 끝에 선보인 무대지만 결국 그르쳤고 때 묻은 길로 새어 나갔다. 생방송 직후, 나흘의 시간 동안 자신을 되돌아본 그는 포기할 수 없었다. 그렇게 맞이한 음악과의 조우 속에 비지는 솔직하고 당당했다. 무엇보다도 ‘행복’에 대한 믿음이생긴 모습이다.
“음악을 할 때 가장 마음이 놓이고 성공에 가까운 감정을 느낀다” 누군가의 방식이 아닌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비지. 그런 그에게 음악이란 무언가 쌓아 올리고 발전시켜나가는 ‘건축’과 같다. 이제는 불안했던 과거마저 추억으로 웃어넘기는 비지가 꽤나 행복해 보였다.
총 세 가지 콘셉트로 이루어진 화보에서 그는 쉴 새 없이 변신했다. 내추럴한 콘셉트부터 감각적인 콘셉트까지 그려내는가 하면, 때로는 아이코닉한 실루엣까지 펼치며 그 이미지를 이어나갔다.
최근 ‘필굿뮤직(FEELGHOOD MUSIC)’ 식구들과 ‘필굿쨈스(Feel Ghood Jams)’ 기부 프로젝트를 진행했다는 그. 신곡 ‘좋은 게 다 좋은 거-everything is everything’를 통해 조금이나마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이어서 얼마 전 MBC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에 출연한 사실도 고백했다. “최근에 아버지가 웃을 일이 없어지신 것 같아서 최고로 좋아하는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다”라며 웃었다. 무대 위에서 노래 불러본 적이 없는데 초심을 되찾고자 출연해봤다고 답했다.
4월에 타이거 JK, 비비와 함께 펭수와의 협업을 이뤄낸 비지. ‘펭수로 하겠습니다’로 각종 음원 차트 1위를 석권한 소감을 묻자 그는 “보통 사람한테 상처받으면 자연에서 위로를 받지 않나. 그런 것처럼 펭수는 우리를 위로해주는 존재”라며 “현실과 비현실 사이에서 고민 상담해줄 수 있는 친구”라고 말했다.
이번에는 뉴질랜드 유학 생활에 대해 묻자 “나이트클럽에서 병 모으는 일도 하고, ‘천원샵’이라고 불리는 ‘달러 스토어’, 레스토랑 웨이터까지 정말 다양한 곳에서 근무하며 음악학교 교습비를 충당했다”라고 답했다. 낮에는 호텔경영학과를 공부하고 끝나자마자 음악학교에서 미디를 다뤘다고.
과거 타이거 JK에 대해 ‘공연 중 처음 소리를 지르게 만든 래퍼’라고 칭했던 그. 그토록 꿈꾸던 아티스트와 이렇게 오랫동안 동행하게 될 줄 알고 있었을까. 그러자 비지는 전혀 몰랐다고 답하며 타이거 JK의 음악을 듣게 된 계기에 대해 설명했다. “뉴질랜드에서도 마오리족 친구들과 친했는데 그중 한 친구가 ‘Your People’이라고 하면서 드렁큰타이거 음반을 추천했다”라며 “남자가 남자 좋아하기 정말 쉽지 않은데 동경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답했다. 그에게는 아직도 이소룡처럼 우러러보는 존재인 것. 타이거 JK와 무대에 오랫동안 섰다고 해서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많은 팬들이 오랫동안 타이거 JK와 함께하는 걸 보고 ‘드렁큰타이거’에 합류할 거라고 예상했다. 이에 대해서 그는 “그런 말이 가끔 나올 때가 있지만 나는 ‘드렁큰타이거’에 대한 정의를 스스로 내리려 하지 않는다”라며 “JK 형과 좋은 음악, 좋은 무대를 함께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뜻깊게 생각하며 타이틀은 중요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과거 ‘무브먼트’ 크루에서 7년 넘게 피쳐링하며 데뷔 앨범을 준비한 그. “아마 무브먼트 멤버들 중에 모두와 다 잘 지내고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거다”라며 과거를 회상했다. 윤미래, 타이거 JK, YDG, 도끼 등 모두와 잘 연락하고 지낸다고. 2년 전 인스타그램에서 본인의 팬을 만났을 때‘이 추억을 10년 더 연장해주실 수 있나요?’라는 메시지에 마음을 움직였다고 답했다. 조만간 다시 뭉쳐서 곡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그.
정규 앨범 자체가 귀한 시대. 새로운 EP ‘Still Bizzionary’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있을까. 비지는 “가장 많이 교류하는 친구들과 피쳐링을 이룰 것”이라며 “물론 이름값이 높은 아티스트와의 협업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대화가 잘 통하는 게 우선”이라고 답했다.
20대의 무브먼트, 40대의 지금. 정말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그는 “음악이 성공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보면 안정적인 삶은 아니지 않나. 그렇지만 방황을 해도 음악 안에서 떠돌았다”라고 말하며 음악을 지금까지 계속할 수 있었던 꾸준함에 대해 설명했다.
2017년 Mnet ‘SHOW ME THE MONEY 6’에서 타이거 JK와 함께 프로듀서 팀을 이뤘던 비지. 합류하게 된 배경을 묻자 “폐기흉 발생 후에 삶에 대한 관점이 바뀌었다”라며 “조그만 것에 대해 감사하고 투정 부리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고 방송에 나가게 된 것”이라고 답했다.
이후 마지막 생방송 파이널 무대에서 우원재와의 합동 무대 중 가사를 실수한 그. “사실 거기에 나오는 친구들에 비해 내 인지도가 낮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악착같이 연습했지만 결국 그르쳤다”라며 조심스레 기억을 꺼냈다. 방송 뒤풀이 없이 핸드폰도 끄고 나흘 정도 소파에 누워있었다고. “포털 사이트 인기 검색어 차트에 내 이름이 계속 뜨는데 ‘제발 순위에서 내려와라’라는 바람만 계속 되뇌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날의 실수도 아름다운 추억이라고. “내가 이겨냈다는 점에 뿌듯하다. 사실 그대로 음악을 접을 수도 있지 않나”라고 담담하게 말하는 그였다.
‘SHOW ME THE MONEY 6’에 관해서는 “프로그램 기획 의도가 ‘새로운 사람’을 찾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라며 “내가 블랙 나인(BLACK NINE)이나 원재같은 친구들을 눈여겨보던 이유”라고 말했다.
나흘간 잠적한 후 다시 켠 핸드폰. 그 안에는 지금껏 도와주고 이끌어줘서 고맙다는 우원재의 인사가 적혀있었다. 비지는 그에 대해 “20년 넘게 음악 생활하면서 많은 동생들을 봐왔지만 원재는 형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진국”이라며 “근본 넘치고 진정성 있는 친구”라고 답했다. 함께 작업한 지 3년이 지난 이 시점에 새로운 곡을 함께 작업할까 검토 중이라고.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꾸리고 싶다고 답했다.
앞으로 주목하고 있는 후배에 대해서 묻자 같은 회사 식구 비비를 거론한 그. “무언가를 생각하고 해석하는 게 정말 독특하고 신비로운 친구”라며 “‘2018 Mnet 아시안 뮤직 어워드’ 참석했을 때는 배우 황정민 선배님이 ‘비비는 꼭 연기해야 한다’라고 말한 적도 있다”고 웃으며 말하기도.
20대보다 30대에게 인기 많은 비지. 이에 대해 그는 “누구라도 좋으니 그들을 위한 힙합을 하고 싶다. 같이 늙고 느껴갈 것”이라며 “예전에는 가사 쓸 때 가진 것을 자랑하고 누군가를 욕했다면, 요즘에는 가족에 대한 가사가 더 마음에 와닿는다”라고 답했다. 자신의 음악을 만들어간다는 것, 어렵지는 않을까. 비지는 “정말 진솔한 가사라면 처음 듣는 사람도 이끌 수 있다”라며 “그렇기 때문에 솔직한 내 감정을 어떻게 전달할 수 있는지가 가장 관건”이라고 말했다.
그런 그의 이상형은 무엇보다도 편안한 사람. “음악 같은 친구라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라며 “내가 잠시 방황하더라도 언제나 옆에 있어 주는 그런 사람”을 꼽았다.
마지막으로 여전히 음악을 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 묻자 “음악을 할 때 가장 마음이 놓이고 ‘성공’에 가까운 감정을 느낀다”라며 “무엇보다도 내가 음악을 계속할 수 있게 도와주는 ‘필굿뮤직’ 식구들의 힘이 크다”라고 답했다. 선입견이라는 한계점을 딛고 일어선 래퍼 비지, 앞으로가 더욱더 기대되는 이유다.
에디터: 박찬
포토그래퍼: 김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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