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내가 정하는 근무시간

입력 2020-08-10 17:33
수정 2020-08-11 00:22
매일 아침 출근 시간에 차량으로 가득 찬 도로 모습을 보면 떠오르는 의문이 있다. “모든 사람이 이렇게 똑같은 시간에 출근해야만 하는 걸까”라는 질문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가 장기화하면서 언택트(비대면) 근무가 ‘뉴노멀(new normal)’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오전 9시 출근, 오후 6시 퇴근의 전통적 근무 형태를 고집해야 할 이유를 찾기 어려워졌다.

지난 2월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유연근무 제도를 적극 활용하라는 내용의 복무 지침을 전 부처에 전파했다. 공직사회 재택근무 활용 건수는 지난해 200여 건에서 올해 4만7000여 건으로 200배 넘게 증가했다. 시차출퇴근제 활용 건수도 25% 늘었다. 트위터 최고경영자인 잭 도시는 직원들이 원한다면 영구적 재택근무도 가능하다고 선언했다. 페이스북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도 앞으로 10년 내에 전 직원의 50%가 재택근무를 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재택근무의 효율성과 유효성 등에 대해서는 여전히 찬반이 엇갈리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국가공무원 약 7만 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는 도시와 저커버그의 전망을 뒷받침한다. 설문조사 응답자의 절반에 가까운 49.7%가 “코로나19가 종식된 이후에도 재택근무를 하겠다”고 답했다. ‘재택근무를 앞으로 더 확대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는 35.0%가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답해 필요 없다는 응답(30.5%)을 웃돌았다. 근무시간과 일터의 개념은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음을 입증한다.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6시에 퇴근하는 사람이 있다면 7시에 출근해 4시에 퇴근하는 직원도 당연히 있을 수 있고, 있어야 한다. 물론 대민 접점의 현장 일이나 안전 관련 업무 등 직무 성격에 따라 유연근무가 적합하지 않은 분야도 있다. 이런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에게도 일률적으로 유연근무나 재택근무를 하라고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유연한 근무의 핵심은 직무 성격이나 개인 상황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예외 없이 특정한 형태의 근무 형태를 강요하지 않는 데 있다.

인사혁신처 건물 안 나의 업무 공간이 자리잡은 11층 입구에 들어서면 모니터가 하나 있다. 어느 부서가 유연근무를 많이 활용했는지, 연가를 적극적으로 사용했는지 등에 대한 현황이 담겨 있다. 연가 사용, 초과근무 감축 등을 수치로 체감할 수 있도록 직원들이 자주 오가는 장소에 설치했다. 유연한 근무 형태가 정착되면 이 현황판은 필요 없어질 것이다. 모니터에 유연근무가 아니라 또 다른 지표가 담길 날을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