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인리스강은 일상생활에서 냄비 칼 등 식기류의 소재로 친숙하다.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스테리인스강이 미래 첨단소재로 각광받고 있다. 녹이 잘 슬지 않는 데다 고온에서도 잘 견디는 특성으로 미래 모빌리티(이동수단), 드론, 로봇 등의 소재에 속속 활용되고 있다. 스테인리스강은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우주 프로젝트 ‘스페이스X’에 투입된 우주선 메인 동체 소재로 채택되기도 했다. 경쟁 소재였던 탄소섬유를 밀어냈다. 국내에선 포스코그룹이 스테인리스강 시장을 적극 공략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향후 스테인리스강 활용 범위가 크게 확대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포스코 기술 개발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경북 포항 기술연구원과 열연공장을 지난 7일 찾았다. 수소차 시장과 함께 급성장
포항제철소 2열연공장 내부로 들어서자 후끈한 열기가 전해졌다. 시뻘겋게 달궈진 슬래브(평편한 철강 구조물)들이 롤러를 따라 이동하고 있었다. ‘포스470FC’라고 이름 붙여진 스테인리스강 슬래브였다. 이 소재는 수소차 연료전지에 들어가는 금속분리판을 제조하는 데 쓰인다. 포스코는 2010년 포스470FC를 개발한 뒤 현대자동차와의 기술 협력을 통해 국내 첫 수소차인 넥쏘에 적용하고 있다.
수소차 한 대에는 분리판 약 1000장(50~70㎏)이 들어간다. 수소차 생산량이 늘어나면 포스470FC의 수요도 급증할 전망이다. 정부는 그린뉴딜 정책에 따라 2025년까지 수소차 20만 대를 보급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포스코는 포스470FC의 생산량을 현재 연 1000t에서 2025년 2만t으로 20배로 확대할 계획이다.
스테인리스강은 내부식성과 전도성이 뛰어난 반면 일반 철강보다 가공하기 까다롭다는 단점이 있다. 포스470FC는 크롬 비율이 일반 스테리인스강(15~18%)보다 높아 가공이 더 어렵다. 임진우 열연부 기술개발섹션 엔지니어는 “가공을 위해 슬래브 표면 온도를 일반 철강보다 약 100~200도 높은 1300도까지 높여서 압연(눌러서 얇게 펴는 것)한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높은 온도에서 가공하면 권취(두루마리 형태로 둥글게 마는 것)도 어려워진다. 임 엔지니어는 “높은 온도로 권취하면 합금 특성상 표면의 균일도가 떨어지거나 제품이 깨지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며 “일반 열연보다 낮은 온도인 600도에서 권취하는 게 포스코의 기술력”이라고 말했다. 전기차 PAV용 강판도 개발
수소차 연료전지에 들어가는 스테인리스강 금속분리판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포스코는 관련 특허 70개를 확보했다. 연구개발(R&D)을 주도한 사람은 김종희 수석연구원이다. 그는 2005년부터 15년간 수소연료전지판 소재 개발에 몰두해왔다. 포스470FC를 개발한 공로로 작년 한국공학한림원에서 ‘젊은 공학인상’을 받았다. 김 연구원은 “포스코는 미래 수소경제 사회가 열릴 것으로 예측해 2005년부터 조직을 꾸려 준비해왔다”며 “많은 실패에도 불구하고 믿고 기다려주는 기업문화 덕에 포스470FC 개발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과거 분리판 시장은 일본 업체들이 주도했다. 일본 업체들은 티타늄으로 된 몸체에 카본(탄소계 물질)을 코팅해 분리판을 생산했다. 도요타의 수소차 미라이에 적용되는 금속분리판 소재도 이런 구조다. 티타늄 분리판은 제조공정이 복잡해 대량생산이 쉽지 않다. 이와 달리 포스470FC는 코팅 공정 자체가 필요없다. 그 덕에 생산원가를 40% 이상 낮추고 무게도 약 30% 줄일 수 있었다. 포스코는 수소차 금속분리판뿐 아니라 드론, 로봇 등의 소재로 스테인리스강 시장을 넓힐 계획이다.
포스코그룹은 제철보국(製鐵報國)을 넘어 소재보국(素材報國)으로 나아가고 있다. 전기차와 개인용 비행체(PAV)를 위한 강판 개발에도 나선 이유다. 특히 계열사 포스코케미칼을 통해 전기차 배터리 핵심 소재인 양·음극재 대규모 생산능력도 확대하고 있다.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은 지난해 11월 열린 ‘포스코포럼’에서 “철강기업에서 ‘미래 모빌리티 종합 소재 기업’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포항=최만수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