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여 명의 사상자를 낸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항구의 대폭발의 원인은 인재로 기우는 분위기다.
참사가 발생한 지 이틀이 지난 6일(현지시간) 레바논 당국자의 발언과 각종 언론 보도 등에선 사고로 인한 폭발에 무게가 실린다.
앞서 지난 4일 오후 6시가 조금 지난 시각에 베이루트의 항구에서는 두 차례 큰 폭발이 일어났다. 폭발의 충격파로 베이루트 내 많은 건물이 무너졌다.
레바논 당국은 항구 창고에 보관된 인화성 물질 질산암모늄이 폭발한 것으로 추정 중이다. 질산암모늄은 화약 등 무기제조의 원료로 쓰인다.
문제는 위험 물질인 질산암모늄이 시내와 가까운 항구에 대규모로 보관돼 있었다는 점이다.
하산 디아브 레바논 총리는 4일 기자회견에서 "폭발이 발생한 베이루트 항구 창고에는 약 2750t의 질산암모늄이 아무런 안전조치 없이 6년간 보관돼 있었다"면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레바논 관료들이 질산암모늄의 위험을 알고도 이를 사실상 방치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랍권 매체 알자지라방송은 5일 "레바논의 고위 관료들은 6년여간 베이루트 항구의 12번 창고에 질산암모늄이 저장됐고 그 위험성도 인지했다"고 보도했다.
해당 보도에 따르면, 2013년 9월 베이루트 항구에 러시아 회사 소유의 배에 실린 질산암모늄이 도착했다. 세관 측은 2014년 6월부터 2017년 10월까지 최소 5차례 질산암모늄을 계속 항구의 창고에 두면 위험하다면서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결정해 달라고 요청하는 공문을 법원에 보냈지만, 법원은 이를 알 수 없는 이유로 뭉갰다.
레바논 당국은 질산암모늄 폭발을 일으킨 정확한 원인을 조사 중이다. 현지 언론에서는 용접 작업 중 발생한 불꽃이 질산암모늄 폭발로 연결됐을 수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레바논 방송 LBCI는 5일 최고국방위원회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의 말을 인용해 근로자들이 문을 용접하던 과정에서 화학물질에 불이 붙었다고 전했다.
미국 CNN방송에 따르면, 하산 크레이템 베이루트 항만 국장은 레바논 방송 OTV에 폭발이 발생하기 불과 몇 시간 전 항구 창고 문을 수리했다면서 "우리는 보안 기관으로부터 창고 문을 고치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말했다. 창고 수리가 질산암모늄 폭발을 초래했을 수 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베이루트 폭발이 특정 세력의 의도적 공격에서 비롯됐다는 정황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폭발 직후 일각에서는 레바논과 적대관계인 이스라엘이나 레바논 이슬람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가 관련됐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관리들은 폭발 당일 "우리와 관련 없다"며 선을 그었다. 헤즈볼라도 유가족들에게 애도를 표하며 폭발에 개입하지 않았다는 태도를 보였다.
AP통신에 따르면, 미국 국방성과 정보당국은 레바논 폭발이 특정 국가 또는 대리세력에 의한 공격의 결과라는 징후가 없다고 말했다.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은 5일 애스펀 안보포럼에서 베이루트 폭발에 관한 질문에 "대부분은 사람들은 보도된 대로 그것이 사고(accident)였다고 믿고 있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4일 베이루트 폭발을 '끔찍한 공격'이라고 규정했다가 하루 만인 5일 "지금 누구라도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말을 바꿨다.
조준혁 한경닷컴 기자 pressc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