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정원 확대’를 둘러싼 후폭풍이 거세지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등 의사단체는 “인력 증원이 의료비 증가와 의료 질 저하를 초래할 것”이라며 집단 파업을 예고했다. 반면 보건의료노조는 “인력 부족 탓에 불법 의료가 만연하다”며 증원을 요구하고 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6일 기자회견을 열고 공공의대 설립과 의사인력 확대를 촉구했다. 박노봉 보건의료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의사 인력이 부족해 의사 업무 중 많은 업무가 간호사 등 진료보조인력(PA)에게 전가되고 있다”며 “종합병원급 의료기관은 PA의 불법의료 없이는 돌아가지 않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PA는 간호사, 응급구조사 등 의사 면허가 없는 의료인력이다. 보건의료노조 조사에 따르면 올해 전국 8개 대학병원에 속한 PA는 717명이다. 병원 한 곳당 평균 90명에 달한다. 노조는 의사 인력이 부족한 탓에 이들 PA가 처방, 수술, 소견서 작성, 주치의 당직 등 의사가 해야 할 업무를 도맡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방의 한 상급종합병원에서 24년째 근무한 간호사 A씨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19개 진료과에 PA가 66명 배치됐고, 이들이 전공의가 해야 할 수술 설명, 동의서 작성, 수술 봉합 등 업무를 하고 있다”며 “PA가 의사 업무를 하는 건 의료법 위반”이라고 말했다.
한 상급종합병원에 다니는 간호사 B씨는 기자회견에서 “의사 인력이 부족한 탓에 의사가 해야 할 업무를 간호사에게 떠넘기는 것이 현실”이라며 “병원에서 시키는 대로 했다가 불법 의료 행위로 환자에게 고발당한 일도 있다”고 호소했다. 지방의료원에 근무하는 간호사 C씨는 “지방 병원은 서울보다 더 많은 연봉을 제시해도 의사 한명조차 채용하기 어렵다”며 “우리 병원은 소아과 의사를 못 구해 진료를 6개월 동안 중단했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과 정부는 지난달 23일 국회에서 당정협의회를 열고 의대 정원 확충 및 공공의대 설립 추진 방안을 확정했다. 2022학년도부터 10년간 의과대학 정원을 매년 400명씩 총 4000명 늘리는 게 골자다. 정부안에 따르면 한 해 3058명인 의대 학부 입학정원은 2022년부터 3458명으로 늘어난다.
의대 정원 확대 발표 이후 의료계에서는 반발이 쏟아졌다. 의료체계 개선 없이 의사 수만 늘리면 의료의 질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대한전공의협의회와 대한의사협회 등 의사 단체는 오는 7일과 14일 총파업을 예고했다. 전공의 1만6000명이 속한 대한전공의협의회는 7일 오전 7시부터 8일 오전 7시까지 24시간 업무를 중단할 예정이다. 중환자실, 분만, 수술, 투석실, 응급실 등 필수 인력까지 모두 포함된다. 의대생인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도 7일부터 수업·실습을 거부하겠다고 예고했다.
다만 이에 대해 ‘밥그릇 챙기기’라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 의사 수는 인구 1000명당 2.4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3.5명 보다 적다. 의과대학 신입생 정원은 2006년 이후 15년째 3058명에 묶여 있다. 지난달 29일 성인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한 리얼미터 조사에서도 정원 확대 찬성 의견이 58.2%로 반대(24.0%)보다 많았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4일 “의료계가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또다시 국민의 건강과 생명권을 볼모로 파업에 나서려고 한다”는 성명서를 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라는 엄중한 상황에서 집단휴진이나 집단행동을 하면 국민의 안전에 위해가 생길 수 있다”며 “국민들에게 피해를 야기할 수 있는 집단행동은 자제하고 대화와 협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갈 것을 요청한다”고 했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