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영 前 행정자치부 차관 "공직자는 소수의 정책 피해자까지 살펴야"

입력 2020-08-05 17:39
수정 2020-08-06 02:56
“종합부동산세 부과는 다수를 위해 소수를 희생시키는 세금 정책이다. 그 정책이 비록 옳다 하더라도, 피해를 보는 소수도 개개인으로서의 국민이다. 진정성을 가지고 왜 이 정책 방향이 옳은지, 무엇을 위해 그렇게 하는지를 (소수에게) 끊임없이 설명해야 한다. (중략) 국민 개개인에 대한 무한책임은 공직자가 져야 할 멍에다.”

김재영 전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 차관(78·사진)은 최근 펴낸 회고록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공무원의 책임의식을 강조하며 이렇게 썼다.

1971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그는 강원도 지역계획과장, 원주시장, 과천시장, 포항시장, 내무부(현 행정안전부) 지방행정국장, 행정자치부 차관, 대한지적공사(LX·현 한국국토정보공사) 사장 등을 역임했다. 《흐르는 강물처럼》은 김 전 차관이 과거 30여 년간 공직생활에서 느낀 보람과 아쉬움을 담아낸 회고록이다.

김 전 차관은 지난달 27일 한국경제신문 기자와 만나 “인생을 살아오면서, 특히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마주친 지난 인연에 고마움과 미안함을 전하고 싶었다”며 회고록을 펴낸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공직자로서 사회적 약자를 위해 조금이라도 더 열심히 뛰어다니지 않았던 게 마음에 걸린다”고 말했다.

사실 그는 과천시장 재임 시절 소년·소녀가장 청소년을 전수조사해 아파트를 무상 임대하는 등 약자를 돕기 위해 발 벗고 나선 관료였다. 하지만 설악동 개발 등 수차례 개발사업 추진 과정에선 단호한 모습을 보이며 철거민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그는 “정책을 펼 때 피해를 입는 계층이 있으면 그들의 목소리를 최대한 경청하면서 합리적인 합의점을 찾으려 노력했다”면서도 “그래도 소외된 사람들이 있었기에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고 회고했다.

더 많이 소통하지 못한 점을 아쉬워한 김 전 차관은 이날 인터뷰에서 현 정부의 소통 방식을 강하게 질책했다. 그는 “최근 정부 관료들이 부동산 대책을 내놓으면서 종부세 인상 대상 국민이 0.4%밖에 안 되니까 99% 국민은 괜찮다는 말을 했을 때 과연 이들이 공무원이 맞는지 의심스러웠다”며 “공무원이라면 피해를 입는 0.4% 국민에게 이 정책이 왜 필요한지 설명하고 설득해야 한다”고 했다.

김 전 차관은 장관의 말이라도 부당하면 면전에서 거부 의사를 밝힌 소신파로 유명하다. 내무부 인사를 총괄하는 지방행정국장으로 일하던 시절, 내무부 장관이 청탁성 인사 지시를 하자 “장관님이 저를 (먼저) 바꾸는 것도 생각해보이소”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양보할 수 없는 가치가 위협받을 때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들이받았다”며 “매일 퇴직을 각오하고 공무원 생활을 했다”고 말했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