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이 펼쳐진 2016년. 금융권에서도 인공지능(AI) 바람이 불었다. 인간을 대체할 로보펀드가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 인간을 뛰어넘기도 했다. 지난해 일부 펀드가 시장 평균수익률을 10%포인트 이상 따돌렸다. 하지만 올 들어 수익률이 급락했다. 소수 성장주만 계속 오르는 이례적인 장세가 펼쳐졌기 때문이다. 펀드매니저들은 바이오, 인터넷, 배터리 관련주를 쓸어담으며 수익을 극대화했다. 하지만 로봇은 급격한 변화에 대처하지 못했다는 평가다. 소수 성장주만 가는 장세에 대응 못해
4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국내 로보어드바이저 펀드(로보펀드) 17개의 최근 3개월 평균수익률은 5.96%로 집계됐다. 이는 국내 주식형펀드(수익률 19.14%), 해외 주식형펀드(17.54%) 등 시장 평균에 크게 못 미치는 것이다. 최근 3개월 BBIG(바이오·배터리·인터넷·게임) 종목 위주의 장세가 이어지며 격차가 벌어졌다. 작년까지는 로보펀드가 앞섰다. 작년 한 해 수익률이 13.42%였다. 같은 기간 국내 주식형펀드는 9.17%를 기록했다.
로보펀드가 부진한 이유는 과거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AI라고 하지만 사실상 퀀트와 비슷하다는 평가다. 종목 밸류에이션, 차트 움직임, 경기 상황 등의 정보를 이용해 포트폴리오를 구성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숫자로 설명하기 힘든 장세가 연출되고 있다. 올해 두 배 이상 오른 카카오는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이 72배에 달한다. 네이버(50배), 셀트리온(65배), 삼성바이오로직스(141배) 등도 마찬가지다. ‘왕년의 스타’보다 세계적인 선수가 될 유망주가 우위인 장세다.
AI는 이런 흐름을 읽지 못했다. 대형 자산운용사에서 로보펀드를 운영하는 매니저는 “로보펀드는 숫자로 표현할 수 있는 과거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의사결정을 한다”며 “특정 섹터만 오르는 상황에서는 시장 흐름을 읽는 데 분명히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직 AI와 로봇이 정성적인 영역은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에셋플러스알파로보코리아인컴펀드의 편입종목 1위는 현대글로비스다. 2위부터 5위는 차례대로 삼성전자우, 한온시스템, DB손해보험, KT&G다. 삼성전자를 제외하고 주도주와 거리가 멀다. 주식과 채권 사이에서 자산배분을 하도록 설계된 대신로보어드바이저펀드는 편입종목 1위가 채권이다. ‘KODEX 종합채권(AA-이상)액티브’를 17.1%나 보유하고 있다. 금리가 낮고 주식이 오르는 장에서 효과적으로 자산배분을 하지 못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국내 로보펀드가 아직 걸음마 단계라고 입을 모았다. 로봇이 고르는 종목도 전문가의 점검을 거치는 경우가 많다. 운용업계 관계자는 “로봇이 종목만 고르고 매수작업은 담당 펀드매니저가 한다”고 전했다. 다른 운용사 매니저는 “프로그램이 종목을 여러 개 선별하면 그중 사람이 보기에 터무니없는 것들을 거르고 나머지만 담는다”고 말했다. 미국에선 올해도 수익률 양호로보어드바이저를 처음 도입한 미국은 AI 수준까지 발전했다. 에퀴봇(EquBot)이 2017년 선보인 ‘AI Powered Equity ETF(AIEQ)’는 IBM이 개발한 AI 왓슨을 기반으로 한다. 최근 3개월 수익률이 23%로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 수익률(12.4%)의 두 배에 가깝다. 기술주 중심인 나스닥 수익률(26.7%)과 비슷하다. 주도주 위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한 결과다. 2일 기준 편입종목의 50% 이상이 정보기술(IT)과 헬스케어다. 에너지, 운송 등 경기민감주는 각 3%대로 줄었다.
최근 장세로 로보펀드의 성패를 예단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있다. 김후정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성과를 논하려면 3년 이상은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장점이 많아 적극 육성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운용보수가 약 0.1%로 일반 펀드 대비 다섯 배 가까이 저렴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부터 로보어드바이저 업체가 자산운용사의 중개를 거치지 않고 직접 펀드를 운용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로보어드바이저 업체 에임은 작년 18.7% 수익률을 올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에임 역시 AI가 아니라 알고리즘에 기반한 펀드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인간이 지닌 펀드 운용 노하우를 프로그램에 얼마나 녹일 수 있을지가 성공의 관건”이라고 말했다.
박의명 기자 uim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