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8월04일(13:31)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국내 최대 재보험 회사인 코리안리가 글로벌 사모펀드(PEF) 칼라일과 함께 공동재보험(coinsurance) 사업을 시작한다고 4일 발표했다.
과거 고금리 확정이율 저축성 상품 등을 대거 팔았다가 갑자기 찾아온 초저금리 시대에 고전하고 있는 국내 생명보험사를 겨냥해 모든 리스크를 떠넘길 수 있는 공동재보험을 대안으로 제시하겠다는 구상이다. 관련 시장(이전계약 기준) 규모는 낮게 잡아도 60조원 가량, 높게 잡으면 약 10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홍태식 코리안리 홍보팀장은 "칼라일과 함께 국내 보험사에 적합한 공동재보험 솔루션을 공동으로 개발할 예정"이라며 "상품 설계 및 구조화, 재보험 자산의 운용, 요구자본 관리 및 신규자본 조달 등 광범위한 업무 분야에 걸쳐 협력하겠다"고 설명했다.
◆보험시장 '지각변동' 예고
공동재보험은 보험사의 자산과 부채를 모두 떠안는 재보험이다. 코리안리 등이 지금까지 국내 보험사에 제공했던 전통적인 재보험과 다르다. 전통적 재보험은 보험가입자가 계약한 내용 중 사망이나 질병이 실제로 발생할 때 돈을 대주는 정도의 역할로 원 보험사가 일부 리스크를 전가할 수는 있지만, 금리 하락 리스크 등 지급여력비율(RBC)에 영향을 미치는 리스크를 다 넘길 수는 없었다.
반면 공동재보험은 계약자에게 보험금을 줘야 하는 가능성, 사업비가 늘어날 가능성, 금리가 떨어질 가능성 등 모든 리스크를 공동재보험을 제공한 회사가 가져간다. 원 보험사는 미래 보험료 수입이 다소 줄어들지만 하지만 종전과 같은 규모의 자본으로 훨씬 적은 리스크만 감당하기 때문에 보험사 건전성의 판단 척도인 지급여력비율을 급격히 끌어올릴 수 있다.
국내 주요 생명보험사들 중 대부분은 현재 공동재보험 계약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저축성 보험을 많이 판매한 손해보험사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금리 추세가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급격히 떨어진 것이 한 원인이다. 3년 만기 국채 금리는 외환위기 직전까지만 해도 연 13% 수준에 이르렀으나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를 거치며 지금은 연 0.8% 수준으로 떨어졌다. 생명보험 계약의 70% 이상이 만기 20년 이상인 탓에 국내 생보사들은 과거에 연 3% 이상 고금리로 계약해 놓은 상품(약 70%)으로 인한 역(逆) 마진이 심각한 수준이다.
◆대다수 생보사, 공동재보험 계약 검토
이런 가운데 회계제도까지 바뀌면서 국내 생보사는 급격한 지급여력 비율 하락을 목전에 두고 있다. 정부는 새 국제회계기준인 IFRS17을 보험업계에 2023년부터 도입하기로 했다. 원래는 더 일찍 도입하려 했으나 보험사들이 준비가 안 됐다는 이유로 조금씩 늦춰진 결과다. 또 신(新) 지급여력제도(K-ICS)도 2023년 도입될 예정이다. K-ICS는 지금까지 사용되던 RBC를 대체하는데, 현 RBC와 마찬가지로 100% 아래로 떨어지는 보험사는 적기시정조치 대상이다.
보험사의 부채를 원가가 아니라 시가로 평가하도록 하는 IFRS17에다 가용자본의 손실흡수성을 따지는 K-ICS까지 도입되면 시나리오에 따라서는 국내 생보사 중 거의 절반 가량은 지급여력비율이 100% 이하로 떨어져 적기시정조치를 당할 위험이 있다는 게 보험업계의 관측이다.
RBC든 K-ICS든 지급여력비율은 가용자본을 요구자본으로 나누어 산출한다. 이 비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유상증자나 배당 제한, 신종자본증권 발행 등으로 가용자본(분자)을 확충하거나, 장기채권 매입 등으로 요구자본(분모)을 낮춰야 한다. 물론 장기적으로 저축성 보험 대신 보장성 보험을 확대하는 등 체질 개선을 위해 노력할 수 있지만 이미 수십년간 판매해 온 보험 계약이 쌓여 있는 상황에서 한 순간에 되는 일은 아니다. 계약이전이나 계약재매입(buy-back)도 검토되고 있으나 국내 보험업 여건과 잘 맞지 않는다.
공동재보험은 보험사들이 이런 상황에서 리스크를 한순간에 덜어내고 지급여력비율을 개선할 수 있는 대안으로 도입이 추진됐다. 금융위원회는 작년 말부터 관련 태스크포스팀을 꾸려 관련법 및 감독규정을 순차적으로 개정하고 있으며 현재 거의 마무리 단계다.
◆코리안리·칼라일, 시장 선점 추진
코리안리는 자산과 부채를 적정 가격에 넘겨받아 이를 운용해서 원 보험사의 금리 하락 리스크를 덜어주고 수익을 올릴 예정이다. 물론 자본 규모가 2조3914억원(3월말 기준)인 코리안리의 리스크 감당 여력에는 한계가 있다. 글로벌 자산운용을 직접 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코리안리가 칼라일이라는 글로벌 PEF를 협업 파트너로 선택한 배경이다.
2018년 AIG그룹의 재보험 사업부문(포티튜드리)을 인수한 칼라일은 포티튜드리의 자체 자본력과 신규 자본조달능력을 바탕으로 코리안리의 리스크 부담을 나눠 지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칼라일로서는 국내 재보험 시장의 60% 이상을 선점하고 있는 코리안리를 통해 공동재보험 및 자산운용 수요를 확보할 수 있고, 코리안리는 부족한 자금력과 자산운용 능력을 도움받는 '윈-윈' 구조다.
두 회사가 겨냥하고 있는 공동재보험 시장 규모는 상당히 클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3월말 기준 국내 23개 생명보험사의 책임준비금 규모는 626조7911억원에 달한다. 이는 시가평가하기 전 원가 기준으로 부채를 평가한 데 따른 것으로, IFRS17에 따라 현 보험계약을 모두 시가평가하면 책임준비금 규모는 1000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이 가운데 약 10%만 공동재보험으로 이전된다고 가정해도 이전 계약의 규모가 60조~100조원 수준에 달한다.
특히 새 회계기준이 도입되는 2023년까지 리스크를 단숨에 덜어내야 하는 수요가 많다는 것을 감안하면, 향후 2~3년 사이에 관련 시장이 급속하게 커지고 이후에는 완만하게 성장하리라고 예상할 수 있다.
코리안리는 2018년부터 전담팀을 설치해 관련 사업을 준비해 왔다. 칼라일과는 지난 수개월간 관련 시장을 조사하고 거래 구조 및 자산운용전략, 보험사용 맞춤형 자산운용상품 개발, 관련 자본조달 전략 등에 관해 논의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홍 팀장은 "코리안리는 향후 공동재보험 시장이 확대되는 데 필요한 담보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칼라일의 자산운용 및 자본조달 역량과 글로벌 금융재보험사업 노하우를 발판으로 차별화된 공동재보험 솔루션을 개발·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또 "칼라일그룹은 국내 재보험 시장에서 코리안리의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재보험 사업과 자산운용 사업의 확장을 적극 추진할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상은/임현우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