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법은 최소한의 윤리

입력 2020-08-03 17:50
수정 2020-08-04 00:05
매월 마지막주 금요일 출근길은 다른 날과는 사뭇 다르다. 집무실 책상엔 2000쪽이 넘는 두 권의 두꺼운 책자가 놓여 있다. 모두 4000쪽이 넘는 이 책자에는 공직자들의 재산과 취업 등을 심사하는 공직자윤리위원회 안건이 담겨 있다. 퇴직 전 소속 부서와 업무 연관성이 높은 기업에 취업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하는 절차인 만큼 수천 쪽의 책자를 한 장씩 넘기다 보면 책자 무게의 몇 곱절보다 더 마음이 무거워진다.

취업 심사 회의 결과는 매달 국민에게 공개되는데, 회의 안건을 하나하나 신중히 심사하다 보면 안타까운 마음도 생긴다. 그동안 취업제한 제도가 계속 강화되다 보니 하위직 공무원이 퇴직 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아르바이트하는 사례까지도 과태료가 부과되고 있었다. 국민 눈높이에 비춰봐도 다소 지나친 처사라는 생각이 들어 시행령을 개정해 아르바이트 같은 생계형 취업은 취업심사가 면제되도록 바꿨다. 이처럼 공직윤리 제도는 국민 눈높이와 합리적 제재 수준 사이에서 최적의 균형점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윤리는 어디까지나 윤리이고 법은 법이다.’ 공직자윤리법 제정안을 논의하던 1981년 국회 회의록에 기록돼 있는 발언이다. 법(法)과 윤리(倫理)는 함께 쓸 수 없으므로 ‘윤리법’이라는 제명 자체가 곤란하다는 뜻이었을 테다. 공직자 윤리를 법으로 규정한다는 생각이 낯설었을 테니 지금은 익숙하게 여겨지는 윤리법이 당시에는 어색하게 느껴졌을 법하다.

‘법은 최소한의 윤리’라는 말처럼 법령 및 제도만으로 윤리를 규율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대한민국 제1호 재산공개 사례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자발적인 재산공개였다. 공직자 재산공개가 법률로 제도화되기 전의 일이다. 미국에서도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솔선수범해 재산을 백지신탁했고 이것이 공직사회 관행으로 자리 잡았다. 백지신탁제도가 공식 법률로 규정된 것은 그로부터 30년 뒤다.

수천 쪽에 달하는 공직자윤리위원회 안건을 검토할 때마다 항상 드는 의문이 있다. 과연 제도를 강화하는 것만으로 국민이 원하는 수준의 공직윤리를 확립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취업제한 제도는 지속적, 단계적으로 강화돼 왔다. 공직에서 쌓은 전문성을 활용할 기회를 막고 직업 선택의 자유가 제한되는 등 사회적 비용이 필연적으로 수반됐다. 제도가 아무리 완벽하고 정교하게 설계돼 있더라도 그것을 지켜야 할 사람이 제도의 취지를 이해하고 공감하지 못한다면 백약이 무효할 뿐이다.

공자는 《논어》 자로편에서 공직자가 스스로 바르게 처신하면 명령하지 않아도 따른다고 했다. 공무원이 법률에 상관없이 스스로의 건강한 양심과 정도(正道)에 따라 행동한다면 공직자윤리법은 굳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공과 사를 철저히 구분하는 문화가 우리 공직사회에 자리 잡을 날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