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산업기술 연구개발(R&D) 정책 좌담회'에 참석한 산업기술 R&D 관련 민·관 전문가들은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국내 산업기술 R&D의 파괴적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한 목소리를 냈다.
이번 좌담회는 유병연 한국경제신문 중소기업부장이 사회를 맡고 김용래 산업통상자원부 산업혁신성장실장, 나경환 산업통상자원R&D전략기획단장, 이학성 LS일렉트릭 전력시험기술원장이 참석해 국내 산업기술R&D 현황 및 문제점을 진단하고 개선 방향을 모색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김용래 실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지난 30년간 유지돼온 글로벌 밸류체인이 완전히 뒤바뀌고 국가 간에는 보호무역주의가 확산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스마일커브를 상향이동하는 것과 새로운 밸류 체인을 창출하는 것이 개방경제 국가인 우리나라의 산업 경쟁력을 강화할 유일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스마일커브란 제품의 개발부터 판매까지 일련의 밸류체인에 따른 단계별 부가가치의 흐름을 보여주는 그래프다. 전통적인 ‘제조’ 단계의 부가가치는 낮아지고, 제조 전단계인 R&D·핵심소재·부품 등의 영역과 후단계인 서비스·유통 단계의 부가가치는 상승하는 것을 나타낸다.
참석자들은 "제조 선진국의 기술력을 빠르게 따라잡는 '패스트 팔로우형'이 그동안 국내 산업기술 R&D 방식이었다"고 분석했다.
김 실장은 "우리나라 R&D 투자규모는 세계 5위, 연구인력도 38만명으로 세계 6위”라며 “그럼에도 R&D 혁신역량은 OECD 국가중 10위권에 머물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기술은 많이 개발했지만, 그것으로 수익을 창출하지 못했던 스웨덴의 '스웨디시 패러독스(스웨덴의 역설)'가 우리에게도 현실이 됐다"고 진단했다.
이학성 원장은 "전통제조업 시대의 공급자 중심 R&D 체계를 목표 변경이 자유롭고 수요자 중심인 '무빙 타깃' 체계로 바꾸고, 연구자들을 관리하기 보다는 그들의 자율성을 강화하는 한편 도덕적 해이에 대해선 징벌적 배상 등 전향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참석자들은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산업기술 R&D 정책 방향으로 △인공지능(AI)·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 기술과 연계한 R&D △국내외 R&D 개방성 강화 △서비스 분야 R&D 확대 등을 제안했다.
나경환 단장은 "제조업 부가가치를 높이려면 공학 기술이 중요한데, 성패는 제조데이터를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에 달렸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업들이 더 많은 제조데이터를 활용하도록 해 제조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이 원장은 "과거 소유 중심에서 사용 중심으로 소비 행태가 변화하는 특징에 맞춰 R&D의 목표도 동일한 자원을 가지고 다양한 고객에게 어떻게 다양화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할지 고민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새로운 제조 패러다임이 발맞춰 R&D 관련 거버넌스 또한 변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 실장은 "산업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중소벤처기업부 등 정부부처가 기업, 대학, 출연연구소 등 각기 다른 대상을 지원하는 상황에서 변화하는 제조 패러다임과 부처 특성을 고려한 관리체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R&D 자금이 비교적 부족한 중소기업을 위해서는 정부가 한해 100조원에 달하는 국내 조달시장을 활용해 사업화를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참석자들은 산업기술 R&D 혁신을 위해 "민간 자율성 강화가 전제돼야 한다"고도 입을 모았다.
이 원장은 "비즈니스 모델 개발은 민간에 맡기고, 국가는 포트폴리오를 관리하며 민간 역량이 발휘될 수 있도록 하는 게 정부의 제역할"이라고 했다. 그는 "국가가 대규모의 다양한 기초 데이터를 저장하는 '데이터 레이크'를 구축하고, 도전적인 제품들이 나올 수 있도록 규제를 푸는 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 단장은 "디지털변환 시대에 민간에서 파괴적 혁신이 나올 수 있도록 기존 선형 모델의 R&D 개발 전략을 과감히 포기하고 유연한 R&D 정책을 수립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