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양대 항공사인 전일본공수(ANA)와 일본항공(JAL)이 올해 2분기 사상 최악인 2300억엔(약 2조26212억원)의 적자를 내면서 10년째 이어진 'ANA-JAL 통합론'이 또다시 힘을 얻을 전망이다. ANA는 2분기 1088억엔의 적자를 냈다고 지난 29일 발표했다. 다음달 3일 실적을 발표하는 JAL은 1200억엔 이상의 적자가 예상된다. 두 회사 모두 분기 기준으로 최악의 실적이다.
◇ 2012년 JAL 국제선 노선 ANA에 통합 논의금융시장과 일본 정부 일부에서는 항공업계가 어려울 때마다 ANA와 JAL을 통합해야 한다는 주장이 되풀이된다. 단순한 아이디어 차원이 아니다. 방만한 경영의 결과 JAL이 2012년 법정관리를 신청했을 때 구제방안의 하나로 JAL의 국제선 노선을 ANA에 통합하는 방안이 논의된 전례가 있다.
두 항공사를 합쳐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는 일본 시장의 크기를 고려할 때 대형 국적 항공사는 1곳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국토가 넓고 전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들인 미국과 중국을 제외하면 대형 국적 항공사가 둘 이상인 곳은 일본과 우리나라, 대만, 필리핀 정도다.
영국의 브리티시에어라인, 독일 루프트한자, 호주 콴타스항공 등 대부분의 나라들은 대형 국적 항공사가 한 곳이다. 면적이 미국과 중국을 합한 것보다 큰 러시아도 국영항공사 아에로플로트 한곳이고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캐나다도 에어캐나다 한 곳이다. 프랑스의 에어프랑스와 네덜란드의 KLM은 아예 합쳐서 한 회사가 됐다. 우리나라와 경제규모가 비슷한 이탈리아의 국영 항공사 알이탈리아는 경영파탄을 거듭하고 있다.
대형 국적 항공사가 두 곳이다보니 중복노선이 많아 경영의 효율성이 떨어진다는게 일본 시장의 판단이다. 일본 관계 부처 관료는 요미우리신문에 "(두 회사의 중복노선이 많아서)국제선은 당장 통합해도 독점금지법에 저촉되지 않는다"고 말할 정도다.
과도한 몸집 불리기도 두 개의 국적 항공사가 벌이는 과당경쟁의 후유증이다. 법정관리를 겪은 JAL이 지난 10년간 1만2000명의 인력과 35기의 항공기, 34개 노선을 줄인 틈을 타 ANA는 급속히 몸집을 불렸다. 지난 3년간 종업원은 17%, 항공기는 13% 늘려 JAL을 제치고 일본 최대 항공사가 됐다. 2019년말 기준 매출(ANA 1조9742억엔 vs JAL 1조4112억엔), 종업원수(4만5849명 vs 3만5653명), 보유 항공기수(303대 vs 241대), 노선수(215개 노선 vs 186개 노선) 등 모든 부문에서 ANA가 JAL을 압도한다.
하지만 급격히 몸집을 물린 대가로 이번에는 ANA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타격을 고스란히 입고 있다. 지난 10년간 부채를 1917억엔으로 76% 줄인 JAL과 달리 ANA의 부채규모는 8428억엔. 업황이 위축되면 현금이 고갈되는 속도가 JAL보다 몇배 더 빠르다. ANA의 1분기 적자(587억엔)는 JAL의 두 배 였다. ◇ 아시아나 매각 초기 대한항공과 통합 아이디어기업의 재무건전성을 나타내는 자기자본비율이 ANA와 JAL은 각각 41.4%, 58.9%로 미국과 유럽 대형항공사의 두배를 넘는다. 당장 경영파탄 위기에 몰려 정부의 인위적 사업재편 대상이 될 가능성이 낮다는 의미다. 일본 정부의 대기업 자금지원 정책을 통해 두 회사가 총 1억5000엔을 확보해 여객수요가 줄어도 1년 정도는 경영을 유지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위기가 장기화하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코로나19는 여전히 수습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많은 전문가들이 코로나19 이후 항공여객의 수요가 예전 수준을 회복되지 못할 것으로 전망한다. 가타노자카 신야 ANA 사장도 29일 기자회견에서 "국내선은 2021년말, 국제선은 2023년도에야 여객수요가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회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5월말 시가총액 기준으로 ANA와 JAL은 전세계 5위와 8위 항공사다. 대한항공은 22위, 시가총액이 1조원 밑으로 쪼그라든 아시아나항공은 순위권 밖이다. 작년 초 아시아나항공 매각작업을 시작했을 때 산업은행 내부에서는 대한항공과의 통합안이 아이디어 차원에서 나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2017년 한진해운을 청산해 해운경쟁력을 스스로 훼손한 선례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고민의 결과였다.
제주항공의 이스타항공 인수가 무산된데 이어 아시아나항공 매각작업도 어려움을 겪자 정부는 공적자금 투입 및 국유화 가능성을 내비쳤다. 전세계 5위 항공사와 8위 항공사의 통합론이 꺼지지 않는 일본을 참고삼아 틀을 깨는 접근법으로 모든 조합을 시도해 볼 때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