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탕인가 독약인가…'협찬' 늪에 빠진 인플루언서 [민지혜의 패션톡]

입력 2020-08-02 11:08
수정 2020-09-10 08:20

한혜연 스타일리스트와 가수 강민경에 이어 임여진 11am 대표와 문정원 플로리스트까지…. 최근 열흘 사이에 수 많은 인플루언서들이 소비자들의 질타를 받고 있습니다. '사탕'과 같았던 협찬이 '독약'이 된 사례부터 할인을 받고 인증기간이 지난 고가의 기기를 판매한 사례까지 다양한 일이 연달아 터졌습니다. 도대체 인플루언서들 사이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그 시작은 특정 브랜드로부터 협찬을 받고 광고성 영상을 유튜브에 올린 한혜연 스타일리스트, 가수 강민경 씨였습니다. 마치 '내돈내산'(내 돈 주고 내가 산 물건의 리뷰)인 것처럼 영상을 올렸는데 알고 보니 돈을 받고 홍보해줬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구독을 끊는 사람, 비판 댓글을 다는 사람이 급격히 늘어난 겁니다.

실제로 한혜연 스타일리스트의 유튜브 채널 '슈스스TV'는 사건이 터진 7월 23일까지만 해도 86만명이 넘는 구독자를 보유한 인기 채널이었습니다. 하지만 일주일여가 지난 31일 현재 79만여명으로 약 7만명이 '구독 취소'를 선택했습니다. 가수 강민경 씨도 일부 영상에 '협찬' 사실을 고지하지 않고 올린 것이 알려지면서 이를 해명하고 수정하는 소동이 있었죠.

한혜연 씨는 논란이 일자 곧장 "여러분께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너무 죄송하다"는 내용의 사과 동영상을 슈스스TV에 올렸습니다. 하지만 구독자들은 "돈 받고 광고한 것을 마치 내돈내산인 것처럼 포장해서 소비자를 기만한 점에 대해 진정 반성하는 것 같지 않다", "앞으로 어떻게 믿고 구독하겠냐" 등 1만2000개가 넘는 댓글로 비판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한 씨는 "헬로 베이비들"이라는 독특한 인사말로 친근한 이미지가 강했죠.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큰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사실 협찬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협찬을 받았는데 안 받은 '척' 하는 게 문제가 되는 거죠. 소액의 협찬금이나 제품 등을 지원 받아서 블로그에 글을 작성하는 블로거들도 반드시 "해당 게시물은 업체로부터 제품(또는 소정의 금액을) 협찬받아 작성되었습니다"라는 문구를 넣어야 합니다. 이를 "광고구나" 하고 걸러서 볼 지, "그럼에도 한 번 들여다볼까"라고 생각할 지는 어디까지나 소비자들의 선택의 문제입니다.


지난 28일 개그맨 이휘재 씨의 부인이자 플로리스트인 문정원 씨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게시물이 뭇매를 맞은 것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화려한 패턴의 원피스를 입은 전신 사진을 게재하면서 문 씨는 "(광고_ @benetton_korea) 엄마 퇴근한다 서언이 꿈 얘기 들어봐야지"라는 피드를 올렸습니다. 베네통의 원피스가 광고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기재한 건데요, 그동안 수 많은 의류 브랜드 제품을 입고 등장할 때마다 "광고 아니냐"고 의심하는 일부 소비자들의 비판이 있어왔던 터라, '광고'라는 짧은 글귀에 소비자들이 분개한 겁니다. "이제서야 인정하는 거냐", "한혜연 강민경이 뭇매를 맞으니까 조용히 '광고'라고 너무 간단하게 올려버린 것" 등의 비판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인플루언서란 무엇일까요. 말 그대로 풀면 '영향력 있는 사람'이죠. 일반인이 유튜브 등에서 유명해진 경우도 있을 수 있고 이미 인지도가 높은 연예인, 모델, 업계 종사자 등도 모두 인플루언서의 영역 안에 들어와있습니다. 인플루언서도 두 종류로 나뉘는데요, 나무위키에는 '콘텐츠를 생산하는 크리에이터형 인플루언서와 패션 뷰티 분야의 모델형 인플루언서로 구분할 수 있다'고 나와있습니다.

나무위키는 여기에 '광고 협찬 제안을 승낙하고 이에 따라 수익을 지급받기도 하는데, 몹시 잘 나가면 연예인으로 데뷔하기도 한다'는 설명을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한 마디로 "협찬 수익을 얻을 만큼 영향력이 높은 사람"이 더 '잘 나가는' 인플루언서라는 얘기입니다. 이 기준에 따르자면 사실 한혜연 씨나 강민경 씨, 문정원 씨 모두 '잘 나가는 인플루언서'입니다. 제 역할을 잘 해내고 있다는 얘기겠죠. 다만, 거짓말을 했느냐가 '질타의 기준'이 된 겁니다.


거짓말로 뭇매를 맞은 또 다른 사례도 있습니다. 패션 온라인몰 11am을 운영하는 임여진 대표가 나노드론 공기청정기를 정상가(620만원)보다 10% 싼 558만원에 판매한 일이 있었습니다. 올해 2월의 얘기인데요, 당시 유럽알러지친환경인증(ECARF)을 받은 제품이라고 판매했지만 실제 제품을 받아본 소비자들이 "이미 인증 기간이 지났다"고 항의하면서 최근 며칠 동안 화제가 됐습니다. 이에 대해 나노드론의 공식 수입사인 헬스에어테크놀로지코리아는 "ECARF의 인증기간이 2017년 종료된 것은 맞지만 인증받았을 때와 동일한 제품이기 때문에 성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고 다른 인증(TUV NORD)을 받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실제 제품을 판매한 11am에 대한 항의는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인증기간이 남아있는 것처럼 판매했기 때문이죠. 임 대표는 "명백한 잘못으로 인지하고 (중략) 해당 내용에 대한 안내와 사과 말씀을 드린 후 환불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31일 밝혔지만, 그의 인스타그램 팔로워 중 일부는 "너무 거만한 태도, 아니라고 우기는 고집 등이 거슬렸는데 결국 이런 일이 터졌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수 많은 팔로워들은 "악플에 마음 쓰지 말고 힘내라"는 댓글도 악플만큼 경쟁적으로 달고 있는데요. 이런 현상 자체가 인플루언서 세계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팬들의 '팬심'이 연예인 못지 않게 두텁지만 악플러의 비판도 그만큼 높은 것이 바로 인플루언서 팔로워들의 특징입니다.

패션과 뷰티 업계에서 유독 문제가 됐던 '광고' 문제는 공정거래위원회에서도 그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질 것 같습니다. 이미 건강기능식품에는 칼을 빼들었죠.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28일 인스타그램, 온라인 쇼핑몰 등에서 고의·상습적으로 다이어트, 부기 제거 등을 표방하며 허위·과대 광고해 온 인플루언서 4명과 유통전문판매업체 3곳을 적발하고 행정처분 및 고발 조치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공정위도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SNS 채널에서 "경제적 대가를 받고 만든 콘텐츠인 것을 밝히지 않고 상품 후기 등으로 위장한 광고로 소비자 피해가 발생하는 것을 막겠다"고 했습니다.

공정위가 오는 9월1일부터 시행하는 '추천·보증 등에 관한 표시·광고 심사지침 개정안'에 따르면 금전적 지원, 할인, 협찬 등 구체적으로 어떤 경제적 대가를 받았는지 명확하게 기재해야 합니다. 구석에 잘 안 보이게 써서도 안 됩니다. 쉽게 보이는 곳에 노출시켜야 하고, 블로그나 카페에 글을 올릴 때도 글의 첫 부분이나 마지막 등 본문과 구분되는 위치에 써야 합니다. 유튜브 등에 올리는 동영상 콘텐츠에서는 게시물 제목이나 영상 시작 부분, 끝부분에 경제적 대가 표시문구를 넣어야 합니다. 방송 일부만 시청하는 소비자도 알 수 있도록 표시문구는 반복적으로 표시하는 것으로 내용을 개정했습니다.

9월1일 시행을 한 달 가량 앞둔 시점에서 우후죽순 터져나온 사건들. "터질 게 터졌다"는 소비자 반응이 많은 걸 보면 여러 인플루언서들이 그만큼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온 게 사실인 것 같습니다. 눈 앞에 '사탕' 같은 협찬이 달콤해보였겠지만, 이를 거짓말로 위장할 경우 '독약'이 될 수 있다는 것도 뼈저리게 느꼈을 테고요. 공정위까지 칼을 빼들었으니 앞으로 '광고'인지 '내돈내산'인지 명확히 알 수 있게 된 건 긍정적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특히 한국에선 '도덕윤리'의 측면에서 한번 소비자들이 등을 돌리면 이를 뒤집는 건 매우 힘들다는 점도 인플루언서들이 가슴 깊이 새겼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