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우정사업본부 등 대형 기관이 포함된 연기금이 국내 주식을 계속 내다 팔고 있다. 코스피지수가 2200선을 돌파하면서 국내 주식 비중이 높아진 국민연금의 매수 여력이 사실상 소진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증권업계에서는 당분간 외국인의 ‘사자세’와 연기금의 ‘팔자세’가 맞붙는 형국이 펼쳐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연기금 10거래일 연속 ‘팔자’
3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7월 한 달간 연기금은 국내 주식시장(유가증권+코스닥+코넥스)에서 총 1조1007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올 들어 월간 기준 최대 순매도 규모다. 특히 연기금은 이날까지 10거래일 연속으로 순매도하며 총 6553억원어치를 팔았다.
연기금은 지난 3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주식시장이 폭락하자 적극 매수에 나서며 개인과 더불어 ‘소방수’ 역할을 했다. 연기금은 3월 한 달간 3조331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이후 시장이 반등하자 4월에는 1조6615억원, 5월에는 4717억원으로 순매수액을 줄여나갔다. 코스피지수가 2200선에 다가선 6월에는 7848억원어치를 순매도하며 올 들어 첫 월별 순매도를 기록했다.
연기금이 순매도 규모를 늘리는 이유는 연기금 중 가장 큰손인 국민연금이 목표로 하는 국내 주식 비중이 가득 찼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말 국내 주식을 132조3000억원어치 보유했다. 지난해 국내 주식 비중은 전체 운용자금 중 18%였다. 올해 국내 주식 보유 비중 목표는 17.3%로 작년 대비 0.7%포인트 줄였다. 해외 주식 등으로 투자 대상을 분산하기 위해서다. 비중은 줄었지만 전체 적립금 규모가 늘어나 총액은 줄지 않았다. 지난해 말 코스피지수가 2200선이었다는 점을 바탕으로 추산해보면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비중은 이미 목표치에 도달한 것으로 분석된다.
외국인이 지난 30일까지 5거래일 연속 유가증권시장에서 순매수를 나타내며 ‘바이 코리아’를 하는 동안 연기금은 이에 대응하는 매도 주체였다. 코스피지수 상승세에 연기금이 브레이크를 거는 모습이 연출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장희종 하이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연기금은 자산 배분 전략에 따라 코스피지수가 오르면 주식을 팔 수밖에 없다”며 “삼성전자 등 정보기술(IT) 업종을 중심으로 매수하는 외국인과 연기금이 당분간 수급에서 맞서는 상황이 펼쳐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대면주 팔고 자동차주 매수연기금이 7월 한 달간 가장 많이 판 종목은 SK하이닉스(-2616억원), 삼성전자(-2079억원), 카카오(-1456억원), 콜마비앤에이치(-795억원), 포스코(-783억원), 엔씨소프트(-781억원), 네이버(-710억원) 등이다. 시가총액 상위주를 중심으로 기계적 매도에 나서면서 주가 상승폭이 컸던 비대면 관련주(카카오, 네이버, 엔씨소프트)에서 수익 실현에 적극 나섰다는 평가다.
7월 한 달 동안 연기금이 가장 많이 사들인 종목은 SK바이오팜으로 1602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7월 2일 상장한 SK바이오팜의 시가총액 비중에 따라 기계적 매수에 나선 결과다. SK바이오팜을 제외하면 연기금은 7월 한 달간 SK텔레콤(543억원)을 착실히 사들였다. 그 외에는 자동차주를 집중적으로 매수해 현대자동차(534억원)를 비롯해 기아자동차와 현대모비스도 각각 386억원, 214억원어치 순매수했다.
자동차주들은 코로나19 영향권에서도 안정적인 내수 수요를 바탕으로 실적을 방어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도 하반기에는 회복할 것이라는 기대가 커 대표적인 실적 개선 기대주로 꼽힌다.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