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 슬리먼과 얼굴들 ㊦

입력 2020-07-31 11:08


[박찬 기자] 런웨이 위의 과감함은 언제나 새롭다. 과거의 영광을 좇지 않고 시작점을 변주할 때 그 가치는 또다시 뒤집어지기 때문. 에디 슬리먼(Hedi Slimane)은 그 과정에서 좀처럼 안주하려 하지 않는다. 하이패션 속 불문율과 같았던 우아한 무대에서 록큰롤적 퇴폐미로 직행하는 데에는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을 것이다.

2000년 ‘디올 옴므(Dior Homme)’, 2012년 ‘생 로랑(Saint laurent)’, 2018년 ‘셀린느(Celine)’를 거치면서 그 세련미는 대중의 긍정과 부정을 넘나들었다. 말 그대로 트렌드 위의 철학이 브랜드를 이끌었던 셈. 그와 함께 우리는 찬란히 빛나는 남성복의 미래를 맞이했다. 기존에 거칠다고만 느껴졌던 레더 재킷과 촌스럽게 여겨지던 뾰족한 쉐입의 구두, ‘매트릭스(The Matrix)’에 나오는 선글라스 등 슬리먼의 시그니처는 가지각색.

“우리만의 이야기와 문화에 개인적 의미를 부여할 것” 그가 말한 것처럼 ‘패션 하우스(Fashion House)’에 대한 열망은 놀랍도록 진실하고 명백하다. 특히나 에디 슬리먼이 꿈꾸는 셀럽들은 전형적인 그 세대 표상인 듯 보인다. 자유로운 것과 엄격한 것, 캐주얼함과 포멀함, 와일드함과 샤프함 사이에서 아름다움을 쫓는 그. 개인적 신념이 흠뻑 묻어나는 셀럽들에게 그 가치는 진하고도 풍요롭다.



뉴욕, 베를린 등 여러 도시 거리를 거닐며 모델을 물색했던 그가 바라는 것은 ‘트랜스적 모던함(Trans Modernity)’. 마치 스케치북 속 아이디어가 실체로 구현되는 것처럼 에디 슬리먼의 컬렉션 위에서 모델은 살아 숨 쉬는 듯하다. 예상치 못한 실루엣과 분위기, 젠더리스적인 미학까지 더해져 어딘가 모르게 암묵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생 로랑에서 사임한 후 포토그래퍼로의 삶을 쭉 이어나갈 것 같았던 에디 슬리먼. 그가 셀린느의 새로운 해답으로 등장할 당시 매체들은 혼란스러움으로 휩싸였다. 기존에 페미닌한 무드를 선보였던 브랜드 컬러와 다르게 그의 신념은 남달랐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수많은 비판과 의혹 속에 ‘에디 슬리먼’이라는 뿌리는 굳건해 보였다. 컬렉션에서 트렌드가 아닌 정체성을 기대할 수 있는 이유.

[Hedi Slimane, 강동원]



강동원의 에디 슬리먼 예찬은 강렬하고 무한하다. 배우 데뷔 전 모델 시절부터 디올 옴므 의상을 즐겨 입었던 그는 186cm의 신장과 긴 다리로 줄곧 소화해냈다. 근육질 몸매만 강조했던 국내 남성 모델계에 센세이션을 이끌었던 그. 이후 배우로서 새 삶을 시작했지만 그 취향은 변하지 않았다. 영화 제작발표회에서 자연스럽게 차려입은 의상 대부분은 에디 슬리먼의 작품.



자신이 아무리 좋아하는 디자이너라도 그 의상까지 소화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강동원에게는 피지컬 그 이상으로 필요한 분위기와 우아함이 서려 있다. 얼마 전 영화 ‘반도’가 개봉할 당시 그가 선보인 의상들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셀린느 2020 Spring 맨즈웨어 컬렉션을 필두로 보여준 레트로적인 무드는 1970년대 패션을 재정립한 듯했다.



2018년 셀린느로 자리를 옮긴 후 파격적인 행보를 보인 에디 슬리먼은 당시 ‘보이스 드리밍(Boys Dreaming)’을 끊임없이 투과했다. 디스코 풍 재킷과 탁 트인 셔츠, 뾰족한 가죽 부츠 등 로커빌리 향이 물씬 풍기는 런웨이는 ‘앤드로지너스(Androgynous)’ 그 자체. 슬림한 선글라스가 그 마무리를 더 했다.



과거의강동원은 ‘생 로랑’하면 떠오르는 셀럽 중 한 명이었다. 그 이유는 마찬가지로 에디 슬리먼의 옷을 좋아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2018년 영화 ‘골든 슬럼버’ 개봉 당시 보여줬던 패션도 그중 하나. 모노톤의 블랙 팬츠와 더비 슈즈를 맞췄고 패턴마저 찬란한 재킷을 걸쳤다. 물론 당연히 키 아이템은 자유롭게 걸어둔 넥타이.



이어 7월 영화 ‘인랑’ 언론시사회에서는 벨루어 소재 셋업 수트를 맞춘 모습이다. 언제나 코튼 소재 수트만 착용했던 자리인 만큼 그의 유니크함이 돋보였던 순간. 정갈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무드를 갖춰 강동원만이 가진 신비로움을 표력했다. (사진출처: bnt DB, 생 로랑, 셀린느, 에디 슬리먼, NEW 영화사업부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보그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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