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는 29일 파리바게트, 샤니 등을 운영하는 SPC그룹에 SPC삼립(삼립)을 부당지원한 사유로 과징금 647억원을 부과했다. SPC그룹에 부과된 과징금은 부당지원 혐의로 공정위가 부과한 과징금 중 역대 최고액이자 유통업체에게 부과한 과징금 중 역대 최고 수준이다. 거래 과정에서 실질적인 역할을 하지 않은 삼립을 끼는 '통행세'로 부당 이익을 제공했다는 점이 골자다.
공정위는 또한 허영인 SPC그룹 회장과 조상호 전 SPC그룹 총괄사장, 황재복 파리크라상 대표 등 경영진과 파리크라상·에스피엘(SPL)·비알코리아(BR코리아) 등 계열사를 검찰에 고발했다. 공정위 "SPC, 통행세로 삼립에 부당이익 414억원"공정위에 따르면 SPC는 2011년부터 2018년까지 그룹 내 부당지원으로 삼립에 총 414억원의 이익을 몰아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생산계열사의 원재료와 완제품을 삼립을 통해 구매하는 '통행세 거래'로 381억원에 달하는 이익이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SPC는 2013년 9월부터 2018년 6월까지 파리크라상, 에스피엘, 비알코리아 등 3개 제빵계열사가 밀다원, 에그팜 등생산계열사 제품을 구입할 때 중간단계로 삼립을 통해 구매했다. 이에 삼립이 3개 제빵계열사를 통해 연 평균 210개 제품에 대해 9%의 마진이 발생한 것으로 분석됐다.
공정위는 삼립이 이 같은 과정에서 생산계획 수립, 재고관리, 영업 등 중간 유통업체로서 실질적인 역할을 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다만 SPC는 삼립이 생산계획을 수립하고 제품의 품질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았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공정위는 SPC가 삼립을 통한 통행세 거래가 부당지원에 해당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허 회장이 주관하는 주간경영회의에서 이에 대한 대책도 논의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외부에 발각 가능성이 높은 거래만 표면적으로 거래구조를 변경하고, 사실상 통행세거래를 지속했다는 점을 꼬집었다.
7년간의 통행세 거래로 삼립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급격히 증가했으나 제빵계열사의 원재료 가격이 높아져 소비자들의 제품 가격 부담이 늘었다고 공정위는 지적했다.
또한 공정위는 SPC그룹은 허영인 회장이 관여해 삼립을 위해 그룹 차원에서 부당지원 방식을 결정하고 실행했다고 설명했다. 통행세 거래뿐 아니라 밀다원 주식 저가양도, 판매망 저가양도 및 상표권 무상제공 등의 방식이 동원됐다. 이 같은 지원은 조상호 전 사장, 황재복 대표이사등 소수 인원이 주요 계열사 임원을 겸직하면서 결정사항을 집행했다고 공정위는 설명했다.
공정위는 이같은 방식으로 총수 일가 지배 회사인 삼립에 7년간 414억원의 부당지원이 발생했다고 봤다. 삼립은 지주사인 파리크라상과 허영인 회장, 허 회장의 장남 허진수 SPC그룹 부사장, 차남 허희수 등 오너 일가가 전체 지분의 70% 이상을 보유 중인 회사다. 샤니 상표권 삼립에 무상제공…판매망도 저가양도공정위는 SPC가 통행세 구조 확립을 위해 삼립을 중심으로 판매망을 통합했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SPC 계열사인 샤니는 상표권을 삼립에 8년간 무상 제공하며 삼립을 지원했다는 설명이다.
SPC 계열사인 샤니는 2011년 상표권을 삼립에 8년간 무상으로 사용할 있다는 내용을 담은 영업양수도 계약을 체결해 삼립에 사실상 13억원을 지원했다. 해당 과정에서 판매망도 정상가인(40억6000만원)보다 낮은 28억5000만원에 양도했다.
당시 샤니가 양산빵 시장 점유율과 인지도 1위를 달리고 있었는데도 삼립을 중심으로 판매망 통합이 진행됐다는 점, 양도가액을 낮추기 위해 상표권을 제외하고 거래한 점 등을 공정위는 지적했다.
샤니와 판매망 통합 이후 삼립은 양산빵 시장에서 점유율 73%의 1위 사업자로 성장했다. 공정위는 "삼립-샤니간 수평적 통합과 함께 수직적 계열화를 내세워 통행세 구조가 확립됐다"고 진단했다.
또한 2012년 파리크라상과 샤니의 밀다원 보유지분을 삼립에 저가 양도한 점 등도 공정위는 지적했다. 정상가격인 주당 404원보다 현저히 낮은 주당 255원에 삼립에 양도, 삼립에 총 20억원을 지원한 점이다. 삼립이 밀다원 주식을 100% 보유하면 밀다원이 삼립에 판 밀가루 매출이 일감 몰아주기 과세대상에서 제외되는 만큼 통행세 거래 구조를 마련하기에 앞서 주식 양도를 진행했다는 분석이다."경영권 승계 고려해 삼립 부당지원"계열사들의 삼립 지원 배경에는 그룹 승계작업이 있다고 공정위는 보고 있다. 그룹 내 유일한 상장사인 삼립의 주가를 높인 후 오너일가 2세가 보유한 삼립 주식을 파리크라상의 주식으로 바꾸려는 등의 목적으로 부당지원 행위를 했다는 진단이다. 이는 총수 일가가 지분을 100% 가진 지주회사 파리크라상의 2세 지분을 높이면 경영권 승계에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공정위가 밝힌 SPC 내부자료에 따르면 삼립의 주식가치를 높인 후 2세들이 보유하는 삼립 주식을 파리크라상에 현물출자하거나 파리크라상 주식으로 교환하는 등의 방법으로 파리크라상의 2세 지분을 높이는 방안 등이 검토됐다. 오너 일가의 지배력 유지와 경영권 승계를 위해 삼립의 매출을 늘려 주식가치를 제고할 필요가 있었던 상황으로 해석했다.
정진욱 공정위 기업집단국장은 SPC 제재 조치에 대해 "대기업집단과 비슷한 행태를 보이는 중견기업집단에 대한 감시를 강화한 것"이라며 "통행세 거래 시정으로 소비자에게 저가로 제품을 공급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오정민 한경닷컴 기자 blooming@hankyung.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o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