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신소재’로 불리는 그래핀(graphen)은 세상에서 가장 얇은 물질이다. 두께가 머리카락 수십만 분의 1인 0.35㎚(나노미터)에 불과하다. 그런데 구리보다 100배 많은 전류를 실리콘보다 100배 빨리 전달한다. 강도는 강철의 100~200배에 이른다. 신축성이 좋아서 고무처럼 잘 휘어지고, 빛이 98%나 통과될 정도로 투명하기까지 하다. 전기가 통하지 않는 플라스틱에 1%의 그래핀만 섞어도 전기가 잘 통한다.
이렇게 놀라운 신소재이지만 학계에 알려진 지는 16년밖에 되지 않는다. 2004년 영국 맨체스터대 안드레 가임 교수와 콘스탄틴 노보셀로프 교수가 흑연에서 이를 추출했다. 이 공로로 두 사람은 2010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한국의 김필립 하버드대 교수도 당시 노벨상 후보에 올랐다.
그래핀의 활용 가능성은 거의 무한하다. 두루마리처럼 둘둘 마는 태블릿PC나 TV, 생체정보를 측정하는 바이오 셔츠 등 첨단 분야에 두루 쓰인다. 안경테와 신발, 화장품에도 응용된다. 우리나라가 그래핀 상용화 연구에서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
홍병희 서울대 교수는 2009년 세계 최초로 휘어지는 투명필름을 개발했고, 이듬해 30인치 터치스크린을 선보였다. 올 들어서는 더 큰 성과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화학연구원의 이제욱 박사팀은 중소기업 엘브스지켐텍과 함께 ‘차세대 전기화학 박리공정’으로 그래핀 대량생산 길을 열었다. 기존 공정에서 1g에 150만원 하는 가격을 2000원대로 낮출 수 있게 됐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장희동 박사팀과 미국 조지아공대 이승우 교수팀은 그래핀으로 대용량 배터리를 만드는 기술을 개발했고, 울산과학기술원의 박혜성·양창덕 교수팀은 세계 최고 효율의 유기 태양전지 개발에 성공했다. 어제는 기초과학연구원의 이영희 나노구조물리연구단장과 삼성종합기술원, 부산대 연구팀이 그래핀을 여러 층으로 쌓아 성능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4층짜리 합성법을 개발했다.
나라 안팎으로 우울한 소식이 들리는 요즘, 뛰어난 초격차 기술로 첨단소재 강국을 일구는 ‘그래핀 영웅’들의 잇단 쾌거에 힘이 솟는다. 한국평가관리원에 따르면 세계 그래핀 시장 규모는 올해 900억달러(약 108조원)에서 5년 뒤 2400억달러(약 288조원)로 급성장할 전망이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