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효의 인사이드 재팬] 소니가 팔지도 않을 전기차 만드는 이유 (영상)

입력 2020-07-28 15:23
수정 2020-10-05 10:42

소니가 27일 차세대 전기차 시제품 '비전-S'(사진)를 일본에서 처음 공개했다. 지난 1월6일 세계 최대 전자쇼 ‘CES 2020’에서 깜짝 공개한 모델이다.

이날 보도진에 공개한 비전-S는 차량 잠금장치를 스마트폰으로 조작하는 등 모바일과 연동한 기술이 특징. 운전석 패널도 스마트폰을 조작하듯 두 손가락을 오므려 지도의 크기를 조절하고, 좌우로 움직여 원하는 음악과 영상을 선택·재생할 수 있다.

소니는 세단인 비전-S 외에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등 다양한 형태의 전기차를 개발해 올해 미국과 유럽, 일본의 일반도로에서 시험주행을 실시할 예정이다. 차체는 오스트리아 마그나슈타이어사에 위탁해서 제작했고 글로벌 자동차 부품회사와도 협력했다. 소니는 "일부 자동차 메이커로부터 연계하자는 제안을 받고 있다"고 공개했다.

금방이라도 양산에 돌입해 자동차 시장을 뒤흔들 것 같은 행보지만 사실 소니는 전기차를 시판할 계획이 없다. 비전-S와 개발 중인 SUV 등은 어디까지나 전세계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차종으로 시험주행을 실시해 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한 제품이다. ◇전세계 센서 시장 48.5% 석권했지만
소니가 막대한 돈을 쏟아부어 팔지도 않을 전기차를 만들고, 홍보하는 것은 자동차가 아니라 자동차에 들어가는 센서를 부각시키기 위해서라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분석했다. 센서는 소니의 주력사업이다. CMOS(상보성금속산화막반도체) 이미지센서의 경우 작년말 소니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48.5%에 달했다. 2위인 삼성전자(18.1%)보다 3배 가까이 높다. CMOS 이미지센서는 카메라 렌즈에 들어온 정보를 디지털 신호로 변환하는 부품으로 자동차나 전자제품의 눈 역할을 한다.

모바일기기와 보안카메라용 CMOS 이미지센서는 세계 시장을 석권한 소니지만 자동차용 센서의 점유율은 8.6%로 3위에 그친다. 미국 온세미(45.0%) 옴니비전(20.9%)과는 까마득하게 격차가 벌어져 있고 4위인 한국의 픽셀플러스(7.3%)에 겨우 앞선다. 이 때문에 소니는 전체의 4%에 불과한 자동차용 센서 매출을 2025년까지 30%로 늘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목표 달성을 위해 시작한 프로젝트가 바로 비전-S다. 소니의 센서 기술을 과시하기 위해 비전-S에는 고정형 라이다(Solid-state LiDAR), CMOS 이미지센서, 거리측정(ToF) 센서 등 33개의 센서가 탑재됐다. 이 센서들을 조합해 비전-S는 안개와 역광, 야간, 우천 등 어떤 환경에서도 주변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해 운전자에게 전달한다. 라이다의 빛을 쏴 돌아오는 시간으로 측정한 거리와 CMOS 이미지센서로 감지한 시각정보를 통해 자율주행도 가능하다. 개발 중인 SUV에는 비전-S보다 더 많은 센서를 탑재할 계획이다. ◇디지털화하는 자동차에 소니도 변신
소니의 또다른 주력사업인 엔터테인먼트 기술도 동원됐다. 각 좌석에는 360도 방향에서 음향이 흘러나오는 소니의 ‘360 리얼리티 오디오’가 내장됐다. 운전자는 라이브 연주회장에서 연주자에 둘러 쌓여있는 느낌을 받는다.

소니가 뒤늦게 자동차용 센서시장에 힘을 쏟는 건 주력사업인 화상센서와 영화, 음향 등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자동운전기능을 장착한 자동차 시장이 놓칠 수 없는 사업영역으로 부상했다는 의미다. 자동차가 스마트폰처럼 디지털화하자 디지털기기 회사인 소니도 한걸음 자동차 시장으로 다가간 것이다.

전세계 자동차 메이커에 자동차용 센서를 판매하려는 소니로서는 이들의 경쟁자가 되는 것은 피하고 싶을 터. 전기차를 개발하되 양산은 하지 않는 이유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