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운동의 산물' 검찰총장 임기제…30여년 만에 흔들리나

입력 2020-07-28 12:05
수정 2020-07-28 14:55

검찰총장에게 2년 임기를 보장하는 제도는 1988년에 도입됐다. 당시 김영삼·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롯해 강삼재·김덕룡·김정길·이기택 등 민주화운동 출신의 국회의원들이 이 같은 내용이 담긴 검찰청법 개정안의 제안자로 이름을 올렸다.

당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에선 '검찰직무의 독립성 보장'과 '검찰 조직의 민주화 도모' 등이 개정안을 제안하는 이유로 제시됐다. 노태우 정부의 법무부도 이에 동의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정권이 입맛에 맞지 않는 검찰총장을 쫓아낼 수 없도록 해 정치 외풍을 차단하려는 취지였다”며 “민주화운동의 산물이었다”고 평가했다.

30여년이 흐른 현재 검찰총장 임기제 도입 취지가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무부 산하 법무·검찰개혁위원회가 지난 27일 검찰총장의 구체적 사건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폐지하는 방안을 법무부에 권고해서다. 반면 개혁위는 법무부 장관의 검찰 수사지휘 범위를 넓히는 방안도 함께 권고했다.

개혁위의 권고가 관철될 경우 검찰총장은 “요새 보이스피싱(혹은 디지털 성범죄) 피해가 심각하니 단속을 강화하라” 등의 일반적 수사지휘만 검찰에 할 수 있다. 사실상 검찰 행정사무 정도 업무만 맡게 되는 셈이다. 현재 검찰총장이 갖고 있는 특정 사건에 대한 압수수색·영장 청구·기소 여부 등을 지시하는 구체적 수사지휘 권한은 전국 6개 고검장들이 나눠갖게 된다. 그리고 법무부 장관은 고검장들에 대해 구체적 수사지휘를 할 수 있다.


법조계에선 검찰의 정치적 중립이 훼손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검찰이 현 정권의 비위 의혹을 수사하는 경우를 가정해 보자. 검찰총장이 직접 수사지휘를 하는 현 제도 아래선 적어도 임기가 보장된 2년 동안은 수사를 이어갈 수 있다. 물론 고검장도 검찰총장 못지 않게 각종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관련 수사를 뚝심 있게 밀어붙일 수 있다.

하지만 고검장은 정해진 임기가 없다. 법무부 장관이 수사가 진행되는 와중에 고검장을 교체해 버리면 수사의 동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개혁위는 검사 보직을 정하는 과정에서 검찰총장의 영향력을 축소하고 법무부 장관의 입김을 높이는 방안도 함께 권고했다. 사실상 검찰총장 임기제를 무력화시키는 개혁안이란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검찰 안팎에선 ‘제2의 조국 수사’는 앞으로 발생할 수 없을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검찰 출신인 김종민 변호사는 “(진정한) 검찰개혁의 핵심은 정치권력이 검찰수사에 함부로 개입하고 정권의 도구로 이용했던 대통령의 인사권과 법무부 장관의 구체적 수사지휘권에 대한 개혁이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도 “행정부서인 법무부가 수사에 개입하는 것을 최소화하고 검찰의 준사법 지위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개혁위가 거꾸로 가는 개혁방안을 내놨다는 얘기다.

법조계에선 개혁위가 진정성 있는 검찰개혁안이 아니라 윤석열 총장과 검찰을 응징하기 위한 방안을 내놓은 것 아니냐는 의심이 적지 않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그냥 검찰총장을 없애죠. 총장 대신에 검찰청에 화분을 갖다 놓는 게 어때요? 어차피 이분들, 식물총장 좋아하시잖아요”라고 했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