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자국 조선업과 해운업을 지원하기 위해 건당 수백억엔(100억엔=1131억원) 규모의 대규모 금융지원을 실시한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합병이 공정 경쟁을 해친다며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던 일본 정부가 자국 조선업을 살리기 위해 사실상 공적자금을 투입한다.
27일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전세계 조선시장의 점유율을 확대하는 한국과 중국에 대항하기 위해 국내 조선업계에 대규모 금융지원을 실시하기로 방침을 확정했다. 1건당 수백억엔 규모로 예상되는 금융지원을 연내 실시해 산업기반을 유지하고 자체적인 해상수송력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선박을 전문적으로 구입하는 특수목적회사(SPC)를 해외에 세우고 정책금융회사를 동원해 SPC에 자금을 지원한다. 일본국제협력은행(JBIC)은 SPC에 직접 자금을 융자하고 일본정책투자은행(DBJ)은 SPC에 자금을 융자하는 민간은행에 공적보증을 서는 등 가능한 수단을 모두 동원할 계획이다.
정책금융회사들로부터 지원받은 자금으로 SPC가 일본 조선사의 선박을 구입하면 일본 해운회사들은 이 SPC를 통해 운용 선박을 매입하거나 용선한다. 정책금융회사를 통해 저리에 자금을 빌린 SPC는 낮은 가격으로 용선이 가능하기 때문에 일본 해운회사가 일본 조선사들로부터 선박을 조달하는 비율도 늘어난다는 계산이다.
일본의 전세계 조선업 점유율(수주량 기준)은 2015년 32%에서 2019년 16%로 불과 4년 만에 반토막 났다. 한국과 중국의 공세에 밀렸기 때문이다. 자국 조선회사의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일본 해운회사들이 운용선박을 일본 조선회사에 발주하는 비율도 2014~2018년 75%까지 떨어졌다. 1996~2000년까지만 해도 이 비율은 94%에 달했다.
일본은 그동안 다른나라 정부가 자국 조선업을 지원하는데 반대해 왔다. 2018년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합병이 발표되자 우리나라 정부가 1조엔이 넘는 공적자금을 지원해 시장경쟁을 해쳤다며 세계무역기구(WTO)에 두 차례 제소했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대로라면 일본의 조선업은 소멸할 수 밖에 없다"며 "WTO 협정을 위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정부의 지원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일본 정부는 지난 2월부터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주도해 국토교통성과 내각관방, 재무성, 금융청 등 관계 부처 합동으로 조선업 지원 대책을 검토해 온 것으로 전해진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