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은 지난 22~23일 열린 대의원대회에서 ‘부산·울산·경남 열사 추모관’을 설립하는 데 노조가 쌓아둔 적립금 23억원을 쓰겠다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업계에서는 “현대차 노조의 위상과 힘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등은 27억원을 들여 경남 양산에 열사추모관을 설립할 계획이다. 비용의 대부분을 현대차 노조가 책임지는 셈이다. 현대차 노조가 23억원이라는 거액을 직원 복지와 무관한 사업에 쓰겠다고 결정할 수 있는 것은 막대한 자금력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기준 현대차 노조원 수는 5만576명이다. 기업단위의 노조 중 가장 많은 숫자다. 노조 전임자 수도 100명을 넘는다.
자금력도 막강하다. 노조원들은 기본급의 1~2%가량을 조합비로 낸다. 현대차 노조는 상급단체인 금속노조로 보내고, 일부를 돌려받는다. 올해 현대차 노조의 예산만 92억원이다. 적립금 중 일부를 쓰면 연 100억원 이상을 사용하게 된다.
지난해 현대차 노조가 쟁의대책비 명목으로 배정한 돈만 31억원이다. 상경 집회를 하면 버스 대여비로 1억원이 넘게 나간다. 민주노총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노조로 노동계에서 차지하는 위상도 막강하다. 자연히 현대차 노조위원장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도 치열하다. 지난해 치러진 8대 위원장 선거 때는 한 후보자가 회사 임원과 함께 골프를 치는 사진이 퍼지기도 했다.
1987년 설립 당시에는 취약한 노동권을 확보하는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갈수록 기득권을 유지하는 데만 집중하고 있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회사 측이 근무시간에는 공장 내 무료 와이파이를 끊겠다고 하자 반발해 집회를 한 게 대표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노조의 주류인 50대는 1998년 정리해고 사태 등을 겪으면서 무조건 회사와 싸워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고 꼬집었다.
최근 들어서는 조금씩 바뀌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지난 1월 합리적 성향으로 평가받는 이상수 위원장이 취임하면서다. 그는 임금을 동결하는 대신 고용을 보장하는 방안을 검토하자고 밝혔고, 공장 간 물량 전환 및 한 라인에서 여러 차종을 생산하는 ‘혼류 생산’도 논의해보자고 했다.
그러나 실제 변화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당장 현대차 노조는 이번 임단협에서 월 기본급을 12만원 올리고, 지난해 당기순이익(3조1856억원)의 30%를 전 직원 및 사내협력업체 직원에게 나눠주라고 요구했다. 업계 관계자는 “임단협 교섭 과정에서 무리한 요구를 하는지에 따라 변화 의지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