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대 수입 전기차에도…'화끈한 보조금' 논란

입력 2020-07-24 17:28
수정 2020-07-25 01:31
미국 전기자동차 테슬라의 모델S 롱레인지는 가격이 1억799만원에 달한다. 어지간한 고소득자가 아니면 구매가 쉽지 않지만 1771만원의 보조금까지 받을 수 있다. 연비와 주행거리 조건만 맞으면 차 가격에 관계없이 지급하고 있는 전기차 보조금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고가 전기차가 모두 수입차라는 점에서 투자와 고용에 기여하지 않는 외국 업체들 배만 불린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와 각 지방자치단체가 올해 전기차 등 친환경차 보급 확산을 위해 책정한 보조금만 1조1500억원에 달한다.

전기차 보조금 ‘복마전’24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 상반기 판매된 1억원 이상 고가 전기차는 테슬라 모델X(126대)와 메르세데스벤츠 EQC(115대), 테슬라 모델S(114대), 재규어 I페이스(27대) 등 총 382대다. 2018년 상반기 2개 모델(테슬라X·테슬라S) 212대보다 80.2% 증가했다.

환경부에 보조금을 신청하지 않은 모델X를 제외한 3개 차종은 세부 모델별로 625만~771만원의 국가 보조금을 받는다. 여기에 지역에 따라 400만원(세종시)~1000만원(경상북도)의 지자체 보조금을 추가로 받을 수 있다.

성능을 따져 모델별로 액수를 달리 지급하는 국가 보조금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가격에 상관없이 모델을 따지지 않고 등록 지역에 따라 지급되는 지자체 보조금은 ‘눈먼 돈’으로 불린다. 지난 1월엔 지자체의 전기차 보조금을 타내기 위해 경남에서 부산으로 위장 전입한 31명이 경찰에 적발됐다. 울산에선 상반기 한 렌터카 업체가 한꺼번에 전기차 300대를 구매하면서 국가보조금을 포함해 총 42억6000만원(대당 1420만원)을 ‘싹쓸이’해 갔다. 예산이 동나 울산에선 연말까지 전기차를 사더라도 보조금을 받을 수 없는 형편이다. 몰려드는 수입 전기차한국의 후한 보조금을 믿고 전 세계의 ‘억’ 소리 나는 고가 전기차들이 앞다퉈 국내로 몰려들고 있다. 독일 아우디는 지난 1일 브랜드 최초의 전기차 e트론을 국내에 출시했다. 최고 출력이 360마력으로, 내연기관차인 제네시스의 최고급 세단 G90 3.3 터보(370마력)와 맞먹는다. 가격도 1억1700만원에 달한다. 국가 보조금을 신청한 상태로 보조금이 적용되면 9000만원대에 구매가 가능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독일의 고급 스포츠카 브랜드 포르쉐도 연말께 전기 스포츠카 타이칸을 국내에 내놓는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가속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2~3초에 불과한 슈퍼카다. 가격도 1억4560만~2억3360만원으로 책정됐다.

테슬라 전기차 판매가 급증하면서 국내 전기차 중 수입차 비중도 껑충 뛰었다. 상반기 수입 전기차 판매 대수는 8745대로, 전체 전기차 판매량(2만2080대)의 39.6%에 달했다. 8745대 가운데 78.2%(6839대)는 테슬라의 보급형 전기차 모델3였다. 이 같은 추세라면 테슬라는 연말까지 약 1만4000대를 판매해 2000억원에 달하는 보조금 혜택을 누릴 전망이다. 외국에선 고가 전기차에 보조금 안 줘해외에선 전기차 보조금 제도를 깐깐하게 운영하고 있다. 제조사별 판매 대수부터 가격까지 규제한다. 미국은 업체별로 20만 대까지 보조금(7500달러)을 준다. 후발 업체에 보조금을 지원해 경쟁을 유도하기 위한 조치다. 테슬라는 2018년 20만 대 판매를 돌파해 보조금을 받지 못한다.

미국은 캘리포니아주를 중심으로 6만달러(약 7200만원)가 넘는 전기차엔 보조금을 안 준다. 독일은 6만유로(약 8300만원), 중국도 30만위안(약 5100만원)이 넘는 차량은 보조금을 주지 않는다. 중저가 전기차 모델을 확대해 전기차 보급 대수를 늘리기 위해서다.

정부가 친환경차 보급 확대에만 목맬 일이 아니라 연구개발(R&D) 투자 확대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배충식 한국자동차공학회 부회장(KAIST 교수)은 “2030년까지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지금 수준으로 유지하려면 53조원이 필요하다”며 “그 돈을 한국 친환경차산업에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환경부는 오는 10월께부터 내년 전기차 보조금 개편 방안을 논의할 방침이다.

김보형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