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중국에 텍사스주 휴스턴의 총영사관을 폐쇄하라고 요구했다. 중국은 이에 맞서 후베이성 우한의 미국 총영사관 퇴출을 검토하고 나섰다.
모건 오테이거스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휴스턴 주재 중국 총영사관 폐쇄 요구는 미국의 지식재산권과 국민의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22일 밝혔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함께 덴마크를 방문 중인 오테이거스 대변인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미국은 중국이 우리의 자주권을 침해하고 우리 국민을 위협하는 것을 용인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미국이 21일 오후 갑자기 72시간 뒤인 24일 오후 4시까지 휴스턴 총영사관에서 퇴거하라고 요구했다”며 “잘못된 결정을 즉각 취소하라”고 촉구했다. 로이터통신은 소식통을 인용해 중국이 맞대응으로 우한 주재 미국 총영사관 폐쇄를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왕 대변인은 미국의 휴스턴 총영사관 폐쇄 조치에 대해 “일방적인 정치적 도발로 국제법을 심각히 위반하고 중·미 관계를 의도적으로 훼손했다”며 “중국은 미국의 난폭하고 부당한 행동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은 미국의 외교관들을 선의로 대했으나 미국은 지난달과 작년 10월 정당한 이유 없이 중국의 외교관을 제재했다”고 지적했다. 또 미국 관료들의 증오심을 유발하는 발언과 비방 때문에 중국 대사관과 영사관들에 최근 폭발물이 배달되거나 직원들이 살해 위협을 받은 일도 있었다고 전했다.
휴스턴은 미국에서 네 번째로 인구가 많은 대도시(700만 명)로, 미 항공우주국(NASA) 본부가 있으며 석유산업 중심지이기도 하다. 휴스턴의 중국 총영사관은 1979년 양국 수교 직후 세워진 최초의 주미 중국 총영사관이다. 휴스턴이 있는 텍사스를 비롯해 오클라호마, 플로리다 등 남부 8개 주를 담당한다.
중국과 미국은 1년 넘도록 계속된 무역분쟁에 이어 화웨이 제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책임론, 홍콩과 신장위구르자치구 인권 문제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충돌하고 있다.中, 스파이 짓 들켰나…총영사관 기밀문서 서둘러 태웠다
美 "자주권 침해 용납 못해"…中 "정치적 도발에 단호 대처"휴스턴 지역 언론들은 중국 총영사관이 퇴거 요구를 받은 직후인 21일 저녁 중국 총영사관 정원에서 문서를 태우는 불길이 치솟아 경찰과 소방대가 출동했다고 보도했다. 휴스턴 경찰과 소방대는 오후 8시께 신고를 받고 영사관으로 출동했으나 중국 측 제지로 진입하지는 못했다.
총영사관 근처에 사는 목격자들은 정원 쓰레기통에서 문서가 불타고 있으며, 직원들이 종이를 계속 던져넣었다고 전했다. 폭스뉴스는 “미국 정부의 철수 요구에 따라 중국 총영사관이 기밀 문서를 소각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미국의 총영사관 철수 요구와 중국의 격앙된 반응으로 인해 양국 간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 20일에는 미국 법무부가 중국 정보당국과 연계해 코로나19 백신 정보 등 각종 기업 정보를 빼내려 한 혐의로 중국인 2명을 기소했다. 이들은 첨단기술, 제약, 게임 소프트웨어 기업 등은 물론 미국과 중국, 홍콩 등에서 활동하는 반체제 인사와 인권 활동가를 타깃으로 삼았다. 법무부 당국자는 중국을 “사이버 범죄자에게 피난처를 제공하는 나라”라고 비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4일 홍콩의 특별지위를 박탈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홍콩의 언론·집회 자유를 제한한 중국 당국자와 이들의 거래 은행을 제재할 수 있도록 한 ‘홍콩자치법’에도 서명했다. 중국이 홍콩 국가보안법을 강행 처리한 데 대한 대응이다. 중국은 “내정간섭”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 2월 중국 일부 매체가 언론이 아니라 사실상 공산당의 기구라며 비자 발급을 제한했다. 이에 중국은 지난 3월 미국 월스트리트저널과 뉴욕타임스 등의 특파원을 출국 조치하기도 했다. 지난해 12월에는 미국이 중국 외교관 2명을 군사 기밀에 접근하려 했다는 이유로 추방했으며 중국은 이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분쟁지역인 남중국해에선 군사적 충돌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중국은 베트남, 필리핀, 대만 등이 둘러싸고 있는 남중국해의 90% 이상을 자국 영해라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은 이 지역에 핵추진 항공모함 등을 파견해 ‘항행의 자유’ 작전을 펼치고 있다. 양국 군대는 남중국해에서 올해 10회 이상 맞닥뜨렸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