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주식 투자로 번 돈이 2000만원 이상이면 양도소득세를 걷기로 했던 방침을 바꿔 ‘주식과 펀드를 합산해 5000만원 이상’ 차익에 대해 과세하기로 했다. 펀드의 과세 시기는 2022년에서 2023년으로 1년 연기했다. 금융투자상품의 전체 손실과 이익을 상계(손익통산)하는 기간은 지난달 정부가 발표한 초안(3년)보다 늘린 5년을 적용하기로 했다. 증권거래세를 0.02%포인트 인하하는 시점은 2022년에서 2021년으로 1년 앞당겨진다. “보완하라” 지시에 내용 대폭 변경
정부가 22일 발표한 2020년 세법개정안에는 이 같은 내용의 ‘금융투자 선진화 방안’ 최종안이 담겼다. 지난달 25일 발표한 초안과 비교해 주식과 펀드 투자자들의 세 부담을 대폭 완화한 게 핵심이다. 이는 지난 17일 문재인 대통령이 “개인투자자들의 의욕을 꺾어서는 안 된다”며 금융세제 개편안에 대해 사실상 수정을 지시한 뒤 변경된 것이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금융투자소득 과세 때 적용하는 기본공제 기준이 2000만원에서 5000만원으로 상향된 것이다. 정부는 이로 인해 과세 대상 주식투자자는 상위 5%(30만 명)에서 2.5%(15만 명) 수준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기본공제 제도를 도입해 일부 비과세가 되는 대상도 상장주식에서 상장주식과 공모형 펀드로 확대됐다. 주식 양도소득 과세 도입 및 채권·파생상품과 펀드 내 상장주식에 양도소득을 과세하는 시기는 2023년으로 당초 계획보다 1년 미뤘다.
증권거래세를 0.02%포인트 인하하는 시점은 2022년에서 2021년으로 앞당겨진다. 2차 인하(0.08%포인트) 시기는 기존 계획인 2023년을 유지했다.
손익통산 이월공제 기한은 기존에 적용하기로 한 3년에서 5년으로 늘렸다. 연간 기준으로 손실을 보면 이후 5년간 손익통산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금융투자소득에 대한 세금을 매달 걷으면 투자자들이 복리 효과를 누릴 수 없다”는 비판을 받았던 월별 원천징수 방침은 반기별 원천징수로 변경됐다.
이 같은 개편으로 초안과 비교하면 향후 5년간 9000억원가량의 세수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주식 양도소득에 대한 과세로 1조5000억원가량이 걷히지만, 증권거래세율을 예정보다 앞당겨 내리면서 2조4000억원의 손실이 난다는 계산이다. “양도세 도입 땐 거래세 폐지해야”전문가들은 이번 세제안도 여전히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장기투자자 혜택은 없다는 게 대표적이다. 해외 선진국 중에서는 장기투자자에게 세제 혜택을 주는 사례가 많다. 미국은 매입 후 1년 이상 지나 매각한 주식 양도차익에 대해선 저율로 분리과세한다. 세율은 개인 소득 규모에 따라 0%, 15%, 20%다. 독일과 프랑스 등은 고액 장기 투자자가 누진세를 적용받는 역차별을 막기 위해 투자 기간에 관계없이 단일세율을 적용한다.
정부가 여전히 증권거래세를 폐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데 대해서도 비판이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초안보다는 완화됐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투자자들의 세 부담이 늘어 국내 증시 위축이 우려된다”며 “양도소득세를 걷기로 한 만큼 증시 활성화를 위해서는 거래세를 폐지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납세자연맹은 이날 낸 입장문에서 “주식 양도차익 기본공제 금액을 5000만원으로 상향조정한 것은 근로 사업소득 등 다른 소득과 비교해 과도한 혜택”이라며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이라는 원칙으로 보면 기본공제를 폐지하고 현재 20% 세율을 낮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손실액을 이월공제해주는 기간은 미국 영국 독일 등 선진국처럼 ‘무제한’으로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