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합주'로 화합 메시지 전한 韓 젊은 연주자들

입력 2020-07-22 17:35
수정 2020-07-23 03:49

잔잔한 현악 선율이 흐른다. 검은 화면에 모자이크식으로 나뉜 네모 칸에 각각 자리잡은 현악기 주자들이 일제히 보잉(현악기의 활을 현에 밀착시켜 소리를 내는 연주기법)을 시작한다. 중앙에 지휘자의 모습이 뜬다. 그의 손짓에 따라 관악 주자들의 선율이 더해진 전주가 끝나자 좌측 하단에 등장한 성악가 12명이 노래한다. “아, 그럼 이제 우리 다같이 행복해요.” 간주 대목에서 화면 하단에 관악 독주자들이 짧게 클로즈업된 뒤 모차르트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의 대단원을 장식하는 합창이 우렁차게 퍼진다. “오늘의 고통과 광란, 어리석음을 행복과 기쁨으로 끝낼 수 있는 것은 사랑뿐이죠.”

한국의 젊은 음악가들이 모인 ‘프로젝트쉼표(project Tacet)’가 지난 7일 유튜브에 공개한 ‘피가로의 결혼’ 피날레 영상이다. 3분 남짓한 동영상은 비록 화면은 52등분한 공간으로 나뉘었지만 화합과 사랑의 메시지를 담은 음악으로 하나되는 연주자들의 모습으로 마무리된다. 이들은 이 영상에 ‘한국 최초 가상 성악+오케스트라 오페라 연주’란 타이틀을 붙였다.

프로젝트쉼표는 미국 줄리아드 음악원 동문인 플루티스트 최예림(28), 테너 김세영(28), 바이올리니스트 노예리(28)가 기획한 연주 모임이다. 1986년생부터 1999년생까지 20~30대 한국인 음악가 53명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미국과 캐나다, 호주, 한국 등 세계 각지의 오페라단과 관현악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현역 연주자들이다.

이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무대에 설 기회가 없어지자 온라인으로 뭉치는 방안을 모색했다. 이른바 ‘버추얼 퍼포먼스(virtual performance)’다. 연주자들이 각자의 방이나 연습실에서 자신의 파트를 연주하는 모습을 촬영한 뒤 이를 모아 동시에 재생하는 방식이다. 미국 샌타페이오페라단에서 활동 중인 김세영은 “6~8월에만 오페라 공연 다섯 편이 취소됐다”며 “프로 연주자들이 무대를 잃어 힘든 상황이지만 코로나19를 통해 무대와 관객의 소중함을 새삼 느껴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버추얼 퍼포먼스는 해외에서는 이미 널리 알려졌고 코로나19 이후 국내에서도 여러 차례 시도된 연주 방식”이라며 “하지만 관현악 반주를 온전히 갖춘 오페라의 한 대목을 ‘가상 합주’로 선보인 것은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최예림은 “프로젝트쉼표의 영문명 ‘타셋(tacet)’은 일반 쉼표(rest)와 달리 한 악장 혹은 한 막을 통째로 쉴 때 주로 등장하는 표기”라며 “코로나19로 모든 것이 멈춰버린 요즘 사람들에게 진정한 휴식을 선사하겠다는 의미에서 프로젝트명을 지었다”고 말했다.

가상 합주를 가능하게 하는 건 영상 편집 기술이다. 이들은 음원과 영상 편집 작업을 모두 직접 한다. 먼저 한국과 미국, 캐나다, 호주 등에서 각 연주자가 보내온 음원과 영상을 음원 편집 프로그램인 ‘로직’과 영상 편집프로그램 ‘루마퓨전’을 이용해 합치고 편집한다. 최예림은 “‘피가로의 결혼’ 영상 제작 때 며칠간 하루 14시간씩 편집 작업을 했다”며 “여러 연주자의 영상과 소리를 맞추는 작업이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그는 “제작은 힘들었지만 우리가 사랑하는 음악으로 하나됨을 더 많은 관객들과 나눌 수 있어 좋았다”며 “연주자들에게도 큰 기쁨과 위로가 됐다”고 강조했다.

프로젝트쉼표는 차기작으로 이달 말께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를 선보일 예정이다. 최예림은 “대중적인 뮤지컬 작품의 가상 합주도 준비하고 있다”며 “코로나19 종식과 관계없이 프로젝트를 지속할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