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벨트 해제가 물건너간 이유 [전형진의 복덕방통신]

입력 2020-07-21 10:24
수정 2020-07-21 10:29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해제를 둘러싼 논의가 부처 간 엇박자라는 논란만 남기고 일단락됐습니다. 결국 대통령이 나서서 교통정리를 했죠. 지난 열흘 간의 혼란은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로 요약됩니다.

그린벨트 해제를 다르게 읽으면 결국 서울 안에 대규모 신규 택지를 지정하는 일입니다. 검토한다는 사실조차 보안에 부치고, 해제한다 하더라도 전격적으로 이뤄졌어야 하는 일이죠. 예상도 못한 시점과 장소에 공공주택지구 지정과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이 병행되지 않으면 부작용을 낳습니다. ‘어디가 개발된다더라’ 식의 투기가 이뤄지니까요. 이 같은 이유로 개발하지 못하는 서울 근교의 땅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3기 신도시를 지정하던 2년 전으로 돌아가 보죠. 신도시로 지정된 곳은 대부분 예상 밖의 장소였죠. 언론에 옛 광명·시흥보금자리지구나 하남 감북지구 등이 꾸준히 언급됐지만 정부의 결정은 정반대였습니다. 당시 한 국토부 관계자는 “실제 신도시 지정을 검토한 지역도 언론에 사전 노출되면 빼는 경우도 상당하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주택공급 방안 논의 과정은 정반대였습니다. 서울의 그린벨트를 풀 거냐 말 거냐를 두고 아무 말 대잔치가 벌어졌습니다. 여당 의원들까지 나서 당위성을 역설했습니다. 결국 푼다면 대상지가 뻔하기 때문에 왜곡된 신호를 줄 수 있는데도 말이죠.

단기적으로 보면 그린벨트 해제는 상징적 의미에 그칩니다. 지구계획 수립과 보상, 실제 주택공급까진 적어도 10년 안팎의 시간이 걸리니까요. 풀리더라도 더 큰 논란이 벌어질 게 자명했습니다. 아직 개발이 끝나지도 않은 2기 신도시와 삽도 안 뜬 3기 신도시의 경쟁력을 낮추는 결과이기 때문이죠. 정부로선 속도도 느린데 온갖 논란까지 낳는 카드를 더 쥐고 있을 이유가 없었던 셈이죠. 그린벨트를 해제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환경보존 문제를 잇따라 거론했지만 사실 3기 신도시도 그린벨트를 풀어 지정한 땅입니다. 서울안의 그린벨트가 아닐 뿐입니다.

여러 가지 대안이 부상하고 있습니다만 새로운 건 많지 않습니다. 유휴부지 개발은 ‘주거복지로드맵’과 ‘수도권 30만 가구 공급계획’에서도 언급됐던 것들이죠. 도심 상업지 고밀도 개발의 경우도 이번에 새로 나온 이야기는 아닙니다. 서울시는 한시적으로 상업용 건물의 주거시설의 비율을 높일 수 있도록 이미 조례 개정까지 마쳐둔 상태입니다.

도심 공급을 늘릴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카드인 재개발·재건축에 대한 언급은 결국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실제 공급 효과가 크지 않기 때문이란 반론도 제기됩니다. 2000년대 초반 저층 아파트의 재건축이 대부분 끝난 상황에서 중층 아파트를 재건축해봐야 늘어나는 가구수가 많지 않다는 것이죠.

하지만 재건축으로 늘릴 수 있는 가구수의 한도, 즉 용적률을 결정하는 것도 정부와 서울시입니다. 늘려주는 용적률의 일부를 공공이 가져가는 식의 대안도 구상해볼 수 있는 셈이죠. 사실 일정 수준까지는 이런 방식의 용적률 인센티브 제도를 이미 시행하고 있습니다.

며칠 전 만난 한 부동산 전문가는 재개발·재건축 같은 정비사업을 ‘폭탄 돌리기’에 비유했습니다. 언젠가는 풀어줘 공급을 늘려야 하는데 당장 가격이 오르는 게 무서워 억제시키고 있다는 것이죠. 누가 됐든 다음 정권의 주택정책까지 벌써부터 꼬여버렸다는 이 인사의 지적을 곱씹어보는 아침입니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