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성진 퉁소 선율에 거문고 가락이 얹힌다. 장구와 퍼커션으로 박자가 맞춰지자 보컬이 입을 뗀다. “밤새도록 놀아나 보자 늴리리야~ 금수강산 가을이 왔네 시화연풍(時和年豊) 애경사로구나!” 국악밴드 ‘고래야’ 멤버들이 후줄근한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으로 흥겨운 타령을 연주한다. 공연장도 평범한 사무실이다. 어지러이 놓인 책들 사이로 노란 커피믹스 상자가 올려진 책장. 분위기가 묘하게 어우러진다.
지난달 30일 미국 공영방송 라디오 NPR의 간판 프로그램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의 한 장면이다. 이 프로그램에선 세계 음악인들이 출연해 사무실과 서재처럼 친숙한 곳에서 약 15분 동안 공연을 펼친다. 콜드플레이, 아델, 스팅, 테일러 스위프트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팝 밴드와 가수들이 거쳐간 프로그램이다. 한국 밴드가 출연한 것은 2017년 국악밴드 ‘씽씽’에 이어 고래야가 두 번째다. 유튜브에 올려진 영상을 본 해외 팬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누워서 치는 베이스(거문고)가 멋지다” “대금 연주가 메탈리카 같다” 등의 댓글이 눈에 띄었다.
올해 데뷔 10주년을 맞은 고래야 멤버를 최근 서울 마포구에 있는 연습실에서 만났다. 고래야는 6인조 밴드다. 경이(퍼커션), 김동근(전통 관악기), 김초롱(전통 타악기), 함보영(보컬), 고재현(기타), 나선진(거문고)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악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진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지금까지 34개국, 51개 도시에서 공연했다. NPR 프로그램에 어떻게 출연하게 됐는지부터 물었다. “2016년부터 미국 투어 공연을 했는데 반응이 나쁘지 않았어요. 그렇게 꾸준히 공연한 덕분에 NPR에서 출연 제의를 받았습니다.”(경이)
국악에 익숙지 않은 해외 팬들에겐 고래야 음악이 어색하게 들릴 수도 있다. 고래야는 ‘박자’에 주목했다고 했다. “세계 음악 축제에서 아프리카, 동유럽 등 잘 알려지지 않은 악을 접하게 됐어요. 각 나라를 대표하는 악기로 지역색을 살리더라도 문화를 초월해 즐길 수 있는 ‘박자’가 있었죠.”(경이) “국악만이 갖춘 색깔은 있지만 넓은 관점에서 보면 완전히 새롭거나 특별한 건 아닙니다. 서양 음악과 조화를 이루는 장단이 있어요.”(김초롱)
20일 발매한 네 번째 정규 앨범 ‘박수무곡’에서는 세계 공통의 언어인 ‘박수’를 전면에 내세웠다. 나뭇조각 여섯 개를 엮은 전통 타악기 ‘박’이 리듬을 이끈다. 1~3집에서 창을 배운 소리꾼이 맡았던 보컬을 4집에선 2017년 합류한 함보영이 담당했다. “저는 이전 멤버처럼 국악을 전공하진 않았습니다. 노래 부를 때 좀 더 자유로웠어요. 창법에 얽매이지 않았습니다. 아니리(판소리 사설)를 연극 대사처럼 읊고, 창을 팝송처럼 간결하게 노래했죠.”(함보영)
이전에 비해 대중음악에 한층 가까워진 고래야는 오는 31일과 다음달 1일 서울 광흥창 CJ아지트에서 데뷔 10주년을 기념하는 단독 콘서트를 연다. 새 앨범에 수록된 곡들을 공연에서 들려줄 예정이다. “보통 앨범 낸 직후 열리는 공연이 가장 재밌어요. 연주자들에게 앨범 준비하면서 쌓인 불안감도 없고 계속 연습한 덕분에 공연 수준도 덩달아 올라가죠. 경쾌하게 춤추고 박수도 신나게 치면서 즐겨주세요.”(경이)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