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보험·증권·신탁업종에 걸쳐 9개 금융회사의 경영권을 전격적으로 박탈했다. 해당 회사 대부분이 상장기업이어서 주식시장에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최근 중국 증시가 당국의 작은 움직임에도 급등락하고 있어 투자자들은 이번 조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중국 은행보험관리감독위원회는 지난 17일 화샤생명보험, 톈안생명보험, 신스다이신탁, 신화신탁 등 6개 회사의 경영권을 접수해 관리한다고 발표했다. 같은 날 증권감독관리위원회도 신스다이증권, 궈성증권 등 3개사의 경영권 접수 관리 방침을 공고했다. 감독당국은 “이들 회사가 실제 소유주의 지분 정보를 은폐하는 등 지배구조에 문제가 있다”며 “고객과 투자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사회 공익을 위해 법률에 근거해 경영권을 인수한다”고 설명했다.
이들 회사의 경영권은 중국 정부가 지정한 보험·증권·신탁회사에 위탁된다. 갑작스럽게 나온 이번 조치는 시장에 미칠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주식시장 마감 이후 발표됐다. 대상 회사 대부분은 상장사다.
중국 경제전문 매체 차이신은 경영권을 박탈당하는 회사들의 자산 총액이 적어도 1조2000억위안(약 207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전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경영권이 바뀌는 이들 회사는 모두 부패 혐의로 중국 모처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 샤오젠화(肖建華) 회장이 지배하고 있는 밍톈그룹 계열사라고 보도했다.
샤오젠화는 복잡한 지분 거래를 통해 100여 개 상장기업의 지분을 보유한 중국 재계의 거물이었다. 그가 성장한 배경에는 태자당(혁명원로 자제 그룹) 같은 든든한 뒷배가 있다는 소문이 많았다. 하지만 그는 2017년 1월 휠체어를 타고 머리가 가려진 채 정체불명의 남자들에 의해 홍콩 호텔에서 어디론가 옮겨졌다. 이후 공개 석상에서 사라졌고 중국 본토에서 뇌물 제공과 자금 세탁, 불법 대출 등으로 수사를 받고 있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앞서 중국 언론들은 샤오젠화가 자신은 뒤에 숨고 대리인들을 앞세워 직간접적으로 다수의 금융회사를 지배하는 것에 대해 중국 당국이 금융시장 안정을 위협하는 심각한 요인으로 보고 우려해왔다고 보도했다. 중국 정부가 이번 조치를 통해 샤오젠화가 금융계에 갖고 있는 영향력을 완전히 없애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된다.
중국 당국은 지난해 5월 유동성 위기에 몰린 네이멍구자치구의 바오상은행에도 비슷한 조치를 취했다. 조사 결과 샤오젠화가 이 은행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당국은 우선 경영권을 박탈해 접수한 뒤 채무 조정과 증자 등 구조조정을 통해 바오상은행을 국유화했다.
일각에선 샤오젠화가 시진핑 국가주석의 정적으로 꼽히는 태자당과 연루돼 있어 집중 타깃이 됐다는 관측도 나온다. 시 주석이 자신의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들이댄 사정의 칼날을 피해가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중국 정부는 2018년에도 태자당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우샤오후이 안방보험그룹 회장, 예젠밍 화신에너지그룹 회장의 경영권과 주주 권리를 모두 빼앗았다. 시장에선 두 기업이 국유은행의 전폭적인 후원으로 성장한 점을 감안할 때 태자당의 지원을 받은 것 아니냐는 소문이 많았다. 당시 반(反)중 성향의 홍콩 빈과일보는 시 주석이 안방보험, 화신에너지, 다롄완다, 하이난항공, 푸싱, 밍톈, 센추리 등 태자당과 연루된 7개 그룹을 표적으로 삼고 있다고 보도했었다.
베이징=강동균 특파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