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보유·취득세 강화, 주식 양도소득세 확대 등 잇단 정부의 세제개편안이 국민적 반발과 저항에 직면했다. ‘선진 세제·시장 구축’이라는 목표는 온데간데없고, 오로지 세수 증대를 위해 세금을 벌금 때리듯 한다는 분노가 넘친다. ‘못살겠다 세금폭탄’ ‘조세 저항 운동’ 등의 거친 구호가 거의 매일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을 오르내리고 있다.
조세 저항이 처음 있는 일은 아니지만, 지금 움직임은 과거와 판이하다. 거대단체가 개입하지 않은 상태에서 시민이 스스로 조직을 꾸리고 집단 행동에 나서는 초유의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조세저항 국민운동’이라는 이름 아래 강남 을지로 등 서울 도심에선 연일 규탄집회가 열리고 있다. 정부 지지층으로 간주돼온 2030세대가 시위를 주도하며 “문재인 정부에 속았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데서 문제의 심각성이 잘 드러난다.
22번의 부동산 대책이 결과적으로 중산층·서민, 청년세대의 소박한 ‘집 한 채의 꿈’을 짓밟았다는 게 이들의 호소다. 유주택자와 무주택자로 갈라치기하는 ‘부동산 정치’로 일관하다 보니 투기를 잡은 게 아니라 시장을 잡고 말았다는 절규다. 대통령은 연초 신년기자회견에서 ‘보유세 강화, 거래세 완화가 맞는 방향’이라고 선언했지만 결과는 보유세·거래세 수직상승으로 이어졌다. 대통령 약속도 손바닥 뒤집듯 하다보니 “시장 안정보다 증세 목적 아니냐”는 심증은 커질 수밖에 없다.
부동산 세금 폭탄 우려는 지난달 발표된 ‘주식 양도소득세 확대’로 옮겨붙었다. 청와대 게시판에는 “중산층으로 가는 남은 사다리마저 걷어찼다”며 금융세제개편안 수정을 요구하는 청원만 수십 개에 이른다. 결국 대통령이 나서서 정책 수정을 지시했지만 자칫 더 큰 혼란을 부르는 포퓰리즘으로 빠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이중과세 논란이 큰 증권거래세 폐지부터 우선 검토하는 것이 정석임에도 ‘다수 투자자가 원한다’며 양도세 부과 대상을 축소하는 생색내기로 일관한다면 ‘증시 선진화’라는 오랜 염원은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다.
조세저항의 원인은 경제논리가 작동해야 할 부동산과 증시마저 이념과 정치논리로 접근하고 있어서다. 한 ‘친문 의원’이 TV토론에서 마이크가 꺼진 줄 알고 “부동산 가격은 안 떨어질 것”이라는 속내를 털어놓고 만 해프닝은 정부·여당의 정치적 셈법을 여실히 드러냈다. 대통령은 주식양도세 부과안 수정을 지시하면서 “국민 수용성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실패의 원인을 직시하는 일이다. 책임 회피적 태도와 땜질식 해법으로 위기를 돌파할 수 있다는 생각은 오만이자 착각이다. ‘주택은 공공재’ 혹은 ‘부자 증세’라는 식의 정치적 프레임을 고집한다면 더 참담한 실패가 기다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