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자동차 노동조합이 지난해 회사 영업이익(2조96억원)의 30%를 직원들에게 성과급 형태로 나눠달라고 요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1인당 2000만원에 해당하는 액수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올해 회사 실적이 급격하게 나빠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지만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다. 업계에서는 노조의 무리한 요구로 기아차가 하반기 노사갈등에 휩싸이면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기아차 노조 집행부는 최근 기본급 인상 및 각종 수당 지급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2020년 임금 및 단체협약 요구안 초안을 마련했다. 기아차 노조는 이를 대의원대회에서 확정할 예정이다. 초안을 보면 기아차 노조는 기본급을 월 12만304원(호봉승급분 제외) 올려달라고 요구할 계획이다. 상급단체인 전국금속노동조합 요구안(6.5% 인상)과 같은 수준이다. 작년 영업이익의 30%(약 6029억원)를 전 직원에게 성과급 형태로 나눠달라는 조항도 있다. 지난해 말 기준 기아차 직원은 모두 3만5203명이다. 1인당 2000만원을 성과급으로 달라는 뜻이다.
각종 수당을 올려달라는 요구도 포함됐다. 노조는 본인(기본)수당을 현재 2만1000원에서 4만원으로, 기술직군에게 지급하는 서비스수당을 1만7000원에서 3만원으로 배 가까이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감정노동수당을 신설해 영업 및 기술직군에게 월 2만원씩 지급해 달라는 요구도 더했다. 직원 노동 강도를 완화하기 위해 회사가 4500억원을 투자하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작년 회사가 번 돈(영업이익)의 25%에 해당하는 규모다.
이 밖에 전기차 및 수소전기차의 핵심부품을 기아차 공장 내에서 생산하라고 주장했다. 현대차그룹은 전기차 및 수소전기차의 핵심부품 중 배터리와 관련 시스템, 모터 등을 외부 또는 현대모비스 같은 관련 계열사에서 만들 계획을 세운 상태다.
기아차가 구입하는 부품 가격을 매년 물가인상률 수준으로 높이라는 요구도 있다. 회사와 협력사가 모두 잘 살아야 한다는 논리지만, 업계에서는 “납득할 수 없다”는 평가가 나왔다. 납품계약을 체결하고 거래가 계속될수록 설비 감가상각 등으로 생산단가는 낮아지기 때문에 오히려 납품단가를 낮추는 게 업계의 상식이라는 지적이다. 노조가 회사의 경쟁력을 갉아먹을 수 있는 요구를 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비판도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기아차 노조의 무리한 요구가 노사갈등 및 생산성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기아차를 비롯한 국내 자동차업체는 올 들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이 마비되면서 해외 판매량이 급감했다. 기아차의 상반기 해외 판매량은 88만2959대로 전년 동기(110만9759대) 대비 20.4% 줄었다. 코로나19 파동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자동차 회사 대부분은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을 할 정도로 경영 상황이 나쁘다”며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미래를 대비해야 할 시점이지만 기아차 노조는 이를 외면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노사관계가 악화돼 노조가 파업이라도 하면 하반기 판매가 더욱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
한국GM 및 르노삼성자동차 노조도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 한국GM 노조는 기본급 12만304원을 인상하고 2200만원 수준의 성과급을 달라고 요구했다. 이 회사는 2014년부터 6년 연속 적자를 내고 있다. 올해 적자가 유력한 르노삼성의 노조는 기본급 7만1687원 인상과 함께 코로나19 극복 등의 명목으로 일시금 700만원을 지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