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층서 과일·채소 팔아…백화점 문턱 낮추니 매출 '껑충'

입력 2020-07-19 17:25
수정 2020-07-20 00:44

백화점은 지난 100여 년간 크게 바뀐 것이 없었다. 굳이 바꿀 필요가 없었다. “돌을 가져다 놔도 팔린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장사가 잘됐기 때문이다. 요즘은 아니다. 명품을 가져다놔도 매출이 잘 오르지 않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더 그렇다. 지난 3월 국내 백화점 매출은 전년 동월 대비 약 40% 급감했다. 생존의 위협을 느낀 백화점들은 변하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보지 못한 다양한 유형의 백화점이 등장하고 있다.

신세계 타임스퀘어점은 그중에서도 가장 변화가 컸다. 1층에 슈퍼마켓을 들였고, 온라인에서나 파는 값싼 스트리트 브랜드 매장도 입점시켰다. 동시에 고급 상품군을 강화했다. ‘양극화’라는 소비 트렌드에 꼭 맞는 점포를 선보였다. 전략은 통했다. 지난달 매출이 전년 동월 대비 6.6% 증가했다. 평일에도 장보러 온 사람 많아이 백화점의 ‘파격’은 1층부터 시작한다. 대부분 백화점 1층엔 화장품, 명품 매장이 있다. 매출이 가장 잘 나오고, 백화점 이미지 제고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배치는 100여 년간 크게 바뀌지 않았다.

신세계 타임스퀘어점은 1층에 슈퍼마켓을 뒀다. 과일, 채소, 고기 등을 판다. 국내 백화점 가운데 이런 시도를 한 백화점은 신세계가 처음이다. 매장에 들어서면 장보러 나온 인근 주민이 많다. 기자가 방문한 지난 16일은 평일인데도 북적였다. 서울 문래동에 사는 한 방문객은 “1층에 명품이 있으면 들어가고 싶지 않은데 슈퍼가 있어서 부담 없이 들렀다”고 했다. 가격도 백화점 치고 많이 비싸지 않다. 한우 1+ 등급 안심을 100g당 1만5000원가량에 팔았다. 온라인에서 구매해도 최소 1만3000원 안팎을 줘야 한다.

신세계도 처음에는 1층에 슈퍼를 둘 생각은 하지 못했다. 초기 구상은 이랬다. 이 백화점은 건물이 두 동이다. 과거 A관, B관으로 불렀다. 이 가운데 덩치가 작은 B관 전체를 ‘리빙관’으로 바꾸기로 결정했다. 이 발상 또한 파격적인 것이었다. 대부분 백화점은 사람들이 가장 덜 방문하는 상층부에 리빙관을 둔다. 신세계는 소비 트렌드를 적극 반영하기로 했다. 요즘 백화점에서 가전, 가구, 인테리어 상품이 잘 팔린다.

문제는 1층이었다. 가전이나 가구 매장을 넣기가 애매했다. 구매가 자주 일어나는 상품이 아니어서 1층에 적합하지 않았다. 신세계는 대신 리빙관과 가장 ‘궁합’이 맞는 상품군을 찾기 시작했다. 결론은 식품이었다. 백화점 식품관을 방문한 사람 중 절반은 리빙관을 들른 것으로 조사됐다. 구매 연관율이 가장 높았다.

이 시도는 성공적이었다. 지난달 가전(매출 증가율 25.0%), 생활용품(15.7%) 매출이 크게 늘었다. 식품 매출 증가율도 17.4%에 달했다. 백화점 ‘문턱’이 낮아지는 부수적인 효과도 얻었다. 2030 불러올 수 있다면…신세계 타임스퀘어점은 이처럼 소비 트렌드 변화를 매장 곳곳에 적극 반영했다. 럭셔리 상품 구색을 크게 늘렸다. 과거 A관으로 불렀던 패션관 2층에서 캐주얼 브랜드를 걷어냈다. 대신 고가의 글로벌 패션 브랜드를 채웠다. 알렉산더왕 막스마라 비비안웨스트우드 바오바오 에르노 등이다. 기존 영등포 상권에는 없던 브랜드다. 백화점에서 수입 브랜드 매출이 증가하는 트렌드를 반영했다.

‘큰손’으로 부상한 밀레니얼 세대를 겨냥해 맛집도 대거 들였다. 지하 푸드코트에 분식집 ‘홍미단’, 닭강정집 ‘송우리 닭공장’, 족발 전문점 ‘도가원’, 옛날식 도시락 ‘윤스키친’ 등을 입점시켰다. 이들 식당의 메뉴는 가격이 싸기 때문에 매출을 크게 늘리긴 어렵다. 하지만 20~30대 젊은 층이 줄서서 먹는 맛집이라면 가리지 않고 입점을 권했다. 밀레니얼 세대가 와야 백화점의 미래가 있다고 봤다.

심지어 호떡집까지 들였다. 서울 홍대와 부산 서면 등에서 이름 난 ‘서울호떡’이다. 커버넛 널디 등 밀레니얼 세대가 좋아하는 스트리트 캐주얼 브랜드만 모아 놓은 ‘영패션 전문관’도 선보였다.

이 백화점 관계자는 “신세계백화점 전국 점포 가운데 20대 매출 비중이 가장 높아졌다”며 “사람들을 불러 모을 수만 있다면 기존의 통념을 깨는 과감한 시도를 지속적으로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