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간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진 가운데 미국 국방부가 백악관에 주한미군 감축 옵션(시나리오)을 제시했다는 현지 언론 보도가 나왔다. 방위비 협상 때마다 반복해 나온 대한(對韓) 압박성 카드인지, 해외 주둔 미군의 재배치 전략과 맞물린 조치인지에 관심이 모아진다. 미 국방부, 여러 옵션 제시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7일(현지시간) 미군 관료들을 인용, “미 국방부가 지난 3월 백악관에 주한미군 감축 방안을 담은 복수의 옵션을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최근 독일 주재 미군의 감축 절차가 공식화한 데다 한·미 방위비 협상이 11개월째 성과 없이 평행선만 그리고 있는 상황이어서 이 기사의 진위가 주목받고 있다.
WSJ에 따르면 백악관은 작년 하반기 유럽과 아시아를 포함해 해외 주둔 미군을 철수시키기 위한 예비적 옵션들을 제시하라고 국방부에 지시했다. 이에 국방부는 같은 해 12월 미군 순환배치의 필요성을 강조한 아이디어들을 정리했고, 이어 올해 3월 주한미군 관련 내용들을 포함한 여러 옵션을 백악관에 제시했다.
미 국방부는 이 보도와 관련, “우리는 언론의 추측에 관해 언급하지 않을 것”이라며 “전 세계 군사태세를 점검하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라고 일축했다. 우리 군당국도 “주한미군 감축 및 재배치와 관련해 양국이 협의하고 있는 것은 없다”고 밝혔다. 공공연히 한국 압박하는 美주한미군 감축은 한·미 방위비 협상 때마다 돌출돼 나온 이슈다. 동맹 관계도 ‘돈’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미국의 군사력을 공짜로 사용하고 있다”는 발언을 수시로 꺼내며 한국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익명의 미 행정부 관료 발언을 통해 방위비 인상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주한미군 감축·철수가 뒤따를 것이란 위협이 공공연히 가해지고 있다.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등 동맹국과의 방위비 협상 성과를 자신의 치적으로 삼으려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작년 9월 시작된 11차 한·미 방위비 협상은 적정 분담금 규모를 둘러싼 양국 간 이견으로 진전 없이 지지부진한 상태다. 미국은 전년 대비 50%가량 오른 13억달러를 요구하고 있지만, 한국은 13% 인상안을 마지노선으로 삼고 있다. 양국이 접점을 찾지 못하고 맞서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 막판 카드로 주한미군 감축 문제를 부각시킬 수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미 의회 내 반대 목소리 커하지만 주한미군 감축은 미 행정부가 독자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미 의회가 국방예산 사용의 근거가 되는 2021 회계연도 국방수권법(NDAA)에 주한미군 규모를 현 수준인 2만8500여 명으로 유지하는 규정을 넣기로 이미 방침을 정했기 때문이다. 국방수권법은 미국 국가안보 이익에 기여하고, 미 동맹의 안보를 침해하지 않는 경우 예외적으로 미군 감축을 허용하고 있지만 남북 간 군사 대립 상황인 한반도에 이를 적용하기 힘들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미 의회 내에서도 주한미군 감축에 대한 부정적 목소리가 높다. 공화당에서조차 주한미군 감축 반대론이 나올 정도다. 마크 그린 공화당 하원의원은 트위터에 “나는 대통령에게 동의하지 않은 적이 거의 없지만 우리는 중국과 맞서는 데 있어 한국의 파트너십에 감사해야 한다”며 “우리는 그들이 필요하고, 그들도 우리가 필요하다”고 썼다.
이정호 기자/워싱턴=주용석 특파원 dolph@hankyung.com